장외 시장에서 ‘제2의 삼성바이오로직스’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바이오 벤처기업 신라젠의 신고식은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하지만 설움도 잠시, 신라젠은 올 하반기 들어 코스닥지수의 질주에 힘입어 무섭게 상승 중이다. 현재 신라젠의 판세는 그야말로 ‘사두용미(蛇頭龍尾)’로 바뀐 셈이다.
◇공모가 밑돈 시초가…10배 이상 성장 = 신라젠은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지난해 12월 6일 코스닥 시장에 문을 두드렸지만, 상장 첫날부터 공모가를 밑돌며 시장 기대감에 부흥하지 못했다. 이날 시초가는 1만3500원으로 공모가 1만5000원보다 15% 낮게 형성됐으며, 종가 역시 공모가보다 13.67% 내린 1만2950원으로 마감했다.
2006년 부산대 의대 연구진이 임상시험을 위해 설립한 신라젠은 항암 바이러스 면역치료제 ‘펙사벡’ 등을 생산하는 의·약학 연구개발 벤처기업이다. 펙사벡이 암을 완치하는 기술이 반영됐다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신라젠은 상장 전부터 시가총액이 1조 원에 달하는 등 장외시장의 대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상장 시점이 다가오면서 고평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는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공모 희망가 밴드 하단인 1만5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그러나 투자자의 실망감도 잠시, 불과 1년 전만 해도 암울했던 신라젠은 올 하반기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대장주’로 급부상했다. 특히 지난달 21일에는 15만2300원을 기록하면서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이 1600%에 달했을 정도다. 주가 상승 덕분에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순위도 무섭게 뛰어올랐다. 상장 당시만 해도 시총 21위 수준이었던 신라젠은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이어 3위까지 올라섰다. 심지어 내년 2~3월 초 코스피로 이전 상장되는 셀트리온의 대장주 자리를 이미 꿰찼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펙사벡 기대감, 주가에 절대적 영향 = 전체 직원 수가 100명이 채 안 되고, 불과 연매출도 50억 원 안팎인 신생 바이오업체가 이처럼 기대 이상으로 급등세를 보인 것은 항암 바이러스인 펙사벡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덕분이다. 해외 다수의 연구기관에서 진행된 임상연구들을 통해 항암 바이러스 효과가 입증되면서 유망한 항암 치료제 중 하나로 부각됐다. 신라젠은 간암·신장암·대장암·유방암 등을 대상으로 총 7개의 펙사벡 글로벌 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신라젠의 경영권을 이어 받은 치과의사 문은상 대표는 “펙사벡은 말기 암환자의 생명 연장이 아닌 완치라는 꿈을 이루게 해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펙사벡은 지난해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개시에 대한 특정임상계획평가(SPA)를 승인받아 현재는 말기 간암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유일하게 면역 항암제부문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FDA 허가와 상용화 직전 단계라는 의미다. 게다가 펙사벡은 FDA 및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희귀 의약품 지정을 받아 시판 후 7년간 시장 독점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펙사벡의 다양한 임상 파이프라인 중 간암치료제 시장만의 가치를 놓고 일각에서는 1조 원가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구완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항암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한 신라젠의 기술력은 펙사벡을 통해 입증됐다”면서 “펙사벡은 향후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MSCI 편입도 주가 견인 한몫 = 신라젠은 최근 글로벌 주가지수 산출 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에도 편입되며 또 한 번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MSCI지수는 미국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가 작성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다. 이 지수를 산출하는 기초 종목으로 선정되면 MSCI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세계 주요 인덱스펀드가 사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MSCI은 지난달 14일 신라젠을 한국지수에 구성 종목으로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MSCI지수 편입의 기대감은 주가에 즉각 반영됐다. MSCI가 신규 편입 종목을 발표한 지난달 14일부터 30일까지 신라젠은 종가 기준으로 37.09%나 급등했다. 20일에는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지수 변경 결과는 지난달 30일 장 마감 후 반영돼 다음 거래일인 이달 1일부터 적용됐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MSCI지수 정기 변경은 편입 대상이 되는 종목들에 대해 평소보다 많은 거래량을 유발한다”면서 “단기적으로 좋은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