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출범해 100일간의 항해를 약속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의 회의가 이번 주(8일)에 다시 열린다. 벌써 세 번째 회의이지만, 별다른 논의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
협의회는 첫 회의에서 단말기 자급제, 보편요금제 순서로 우선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첫 번째 논의 주제인 ‘단말기 자급제’부터 협의회 참여 주체인 제조사, 소비자·시민단체, 이동통신 3사,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등 모두의 반대로 ‘칼질’을 당하고 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통신업체 대리점이 아닌 일반 가전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휴대전화를 사서 고객이 원하는 통신업체에 가입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이동통신사가 휴대전화 판매를 하지 못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완전자급제가 안건으로 오른 두 번째 회의에서 휴대전화 판매업자들의 모임인 유통협회는 유통망이 붕괴될 수 있다면서 “완전자급제를 법률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민단체들도 “완전자급제가 법제화되면 단말기 보조금과 25% 선택약정 요금할인이 사라지는 만큼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단말기 지원금이 없어지고 제조사의 유통관리 비용이 증가해 오히려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반대 의견을 재차 강조했다. 이통사들도 “완전자급제 도입으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이 함께 있을 수 있으며, 단말기 가격이나 통신요금 인하 효과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데 입을 모았다. 특히 당초 ‘보편요금제’ 등 통신비 인하 압박 대응 차원에서 찬성 입장을 밝혀 온 SK텔레콤이 ‘신중론’을 앞세우며 기존 입장에서 선회하면서 어느 누구도 완전자급제 법제화에는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3차 회의에서는 유통망 피해를 줄이고 단말가격 인하를 유도하면서도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대안 찾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완전자급제는 ‘점진적 자급제’로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분리공시제, 완납제 활성화 등의 대안까지 논의되다 보면 자급제에 대한 결론을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 2월까지 통신비 정책협의회가 절충된 자급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더라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좌초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협의회에 민간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국회 과방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협의회 구성안을 만든 만큼 절대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지난달 말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완전자급제는 심의 안건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통신사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다음 의제인 ‘보편요금제’ 논의 결과 역시 별 기대가 없어진 상황이다. 이제 정부의 중재 역할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사공(沙工) 많은 협의회를 원활히 이끌며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인하 방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