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다음 달 1일 효암 이일규 제10대 대법원장의 서세(逝世) 10주기를 맞아 서울 서초동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추념식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이날 추념식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비롯해 4명의 전임 대법원장,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전ㆍ현직 대법관, 원로 법조인, 이 전 대법원장의 차남인 이창구 변호사(전 대구고등법원장) 등이 참여해 효암의 넋을 기린다.
이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확립하는 등 일획을 그은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대법원장은 192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48년 10월 사법고시의 전신인 조선변호사시험(2회)에 합격하면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
고인은 유신정권 시절인 1973년부터 12년 8개월 동안 대법원 판사(대법관)로 재직했다.
당시 정보기관 요원의 법원 출입은 예삿일로 통하던 시절이었지만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77년 고영근 목사 긴급조치 위반사건 등 시국, 공안사건에 대한 중형 선고에 10여 차례나 소수의견을 내며 외부 압력에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인은 1988년 7월 대법원장에 취임하는 조건으로 청와대에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해 줄 것으로 요구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당시 노태우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
새로운 대법관 구성에도 2배수가 아닌 정수(13명)를 대통령에 임명 제청해 정치권의 영향력을 차단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생전에 여러가지 별명으로 불렸다. 곧은 성품과 굽히지 않은 소신으로 '통영 대꼬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주·대전·대구지방법원장 재직 중에는 후배 법관들과 함께 판례연구를 하고 판결문을 일일이 고쳐주는 등 ‘선생님 원장’이라고 불렸다.
이 같은 고인의 업적과 일화는 이 전 대법원장이 사망한 후에도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모두 존경하는 대법원장으로 효암을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