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근로시간 단축, 사람이 뒷전이다

입력 2017-11-2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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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책사회부장

월화수목금금금의 과잉근로가 사라지고 주말이면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가족과 나들이를 다니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곧 올 모양이다. 마침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피곤한 일상 대신 저녁이 있는 웰빙(Well Being)을 누리게 되나 보다.

23일 열린 국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잠정합의했다. 각 당 간사는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내년 7월 1일부터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에 시행키로 의견을 모았다. 휴일수당은 현 할증률을 유지해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했다.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돈 문제를 양보하고 시간에 집중한 것을 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일자리 나누기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다 좋다. 하지만 현실에 대입해 정말로 삶의 질이 나아지는지, 일자리가 생기는지 따져 봐야 한다.

설익은 근로시간 단축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점을 가볍게 본다는 점이다. 퇴로가 없다고 판단되면 꼼수와 역공에 나설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를 테면 기업은 수당을 줄이기 위해 기본급을 낮추는 카드를 꺼낼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최근 “휴일근무를 ‘휴일근무이자 연장근로’로 인정해 수당을 크게 높이는 경우 기업들은 오히려 기본급인 ‘정규임금’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을 정도다.

공장을 해외로 옮겨 버리는 산업공동화는 이미 수없이 확인된 부작용이다. 공장 이전은 싼 임금을 찾아 나섰기 때문인데, 근로시간 단축을 왜 갖다 붙이냐고 따질 수 있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의 사례를 보자. 2000년, 집권당이던 사회당은 법정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제도를 시행했다. 사회당이 이를 도입한 목적 역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좋은 일자리들이 프랑스를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자동차 기업들은 제한된 근로시간으로 경쟁력이 낮아지자 생산기지를 동유럽과 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며 프랑스인들을 등졌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해 실업률이 급격히 치솟자 프랑스 정부는 엎지른 물을 다시 담으려 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뒤늦게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최대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미 옮긴 공장을 다시 뜯어오려는 기업은 없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0.5%로 더 높아졌는데, 특히 청년 실업률이 23%에 이르러 ‘프랑스 병’이라는 오명을 만들었다.

중소기업, 특히 지방에 소재한 영세 사업장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3D 산업에 종사하는 지방 소기업들이 생산직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 빈자리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외국인 근로자 수를 쿼터제(의무 할당제)로 정해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허용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영세 기업들은 일손 부족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외국인 근로자 추가 고용 등의 규제 완화가 없는 상태에서 덜컥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할 경우 중소기업들은 공장을 놀리거나 불법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사람을 더 고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리 쉬운 일이라면 애초에 외국인 근로자를 불러다 썼을 리가 없다. 더구나 기업에 채용은 단순한 셈법으로는 풀 수 없는 다차원 방정식이다. 5명의 근로자가 68시간씩 총 340시간 일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될 경우 이 회사는 6.5명이 필요하게 된다. 1.5명을 더 고용해야 하므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셈법인데,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할 때는 임금뿐 아니라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법이다. 4대 보험과 복리후생비용, 교육비용, 관리비용 등 고용 행위 자체가 발생시키는 비용이 생겨나게 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들 경우 중소기업들은 연간 8조6000억 원의 추가적인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연 영세 기업들이 이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근면성실이 미덕이던 공업입국의 시대는 지났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하는 시간보다 효율과 창의성이 곧 가치인 세상에 맞게 시스템을 고칠 때가 됐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거꾸로 저임금 노동, 심지어 실업을 불러온다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 전광판의 숫자가 우선이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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