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종교계발(發) 세습 논란이 확산일로에 있다. 장로교단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강남의 명성교회가 담임목사직을 놓고 부자(父子) 세습의 길로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모양새다. 단순하게 세습의 사전적인 의미를 빗대어 풀이하면, ‘한 집안(등록교인 10만 명)의 재산(1000억 원대의 재정권)이나 신분(담임목사직)을 아버지에서 아들로 물려주고 물려받는다’라는 사회적인 비난이다. 교회로 모인 돈과 권력 앞에 굴복하는 한국 개신교의 세속적인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세습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계급 문화처럼 여겨진다. 이미 재벌 기업들의 족벌·세습 경영, 사립학교 이사장과 심지어 언론계까지 3세 또는 4세 경영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사회 깊숙이 숨어들었다.
그렇다면 ‘주인이 없다’는 세평(世評)을 받고 있는 금융권은 세습과 거리가 멀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인이 없기에, 누가 누구에게 물려주고 물려받는 그런 세속적인 결탁에서는 자유로운 듯 보인다. 하지만 ‘내치(內治)’로 변질된 세습의 기억은 뚜렷하다.
1991년 신한은행장부터 신한금융지주 회장까지 약 20년간 장기집권한 라응찬 전 회장, 그리고 1997년 하나은행장부터 하나금융지주 회장까지 6연임해 15년간 CEO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김승유 전 회장. 이들이 지배한 회사는 ‘상왕(上王)과 왕(王) 회장’의 그늘 아래 수십 년간 안정적인 지배구조라고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장기화된 내치는 이른바 ‘라응찬 라인·김승유 라인’이라는 줄서기 문화를 만들고 권력의 세습화를 초래했다. 외부 입김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을 허용하지 않았던 터라, 치밀하면서도 전략적인 세습화가 진행됐다. 이들은 2011년과 2012년 비슷한 시기에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의 후광을 받은 인사들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 아무도 모르게 진짜 주인이 되어 버린 듯싶다.
올해 3월 라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한동우 전 신한금융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고문직은 자문 역할이지만, 막후경영 논란을 야기하는 자리다. 표면적으로는 그룹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조언자’ 역할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룹의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수’ 역할에 가깝다. 내년 3월, 2012년부터 하나금융 회장을 맡아온 김정태 회장이 3연임에 도전한다고 한다. 하나금융도 일찍이 복심(腹心)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준 김 전 회장이 연간 4억 원의 고문료를 받으며 막후경영 논란을 야기했다.
“남의 집안 일이다”라는 해명에도 세습화된 권력의 이양은 사회적인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 부자 세습을 강행한 명성교회, 되풀이되는 권력의 세습으로 ‘신뢰의 비즈니스’가 추락한 금융회사, 양쪽 모두 세습에 대한 자기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