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습근평 주석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인용한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겪어야만 맑은 향기를 풍긴다”는 뜻의 한문 구절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에 대한 얘기를 했다. 오늘도 그 이야기를 좀 더 하고자 한다.
회담 현장을 보지 못한 필자는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치 현장에서 본 듯이 눈에 그려지는 풍경은 있다. 문 대통령이 습근평 주석을 향해 친밀한 표정과 어투로 “습 주석님! ‘매경한고(梅經寒苦)’, 즉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겪어야만 맑은 향기를 풍긴다’는 말이 있지요?”라면서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이미 이 대목에서 문 대통령은 회담의 기선을 잡았다.
왜냐하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을 시로 표현한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겪어야만 맑은 향기를 풍긴다’는 말에 대해 습 주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No!”라고 부정할 수는 없을 터이고,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그 말 안에 은유로 자리한 사드 문제로 인하여 추위의 고통을 겪은 한·중 관계를 이제는 맑은 향기를 풍기는 단계로 전환시켜 보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인용한 상대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간파했지만 이미 상황은 “그래, 맞아요”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더 이상 사드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한·중 관계는 개선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외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외교는 회담의 첫 인사말로 날씨가 좋다느니 비가 온다느니 하는 등의 ‘날씨 타령’ 외에 달리 사용한 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논어’에는 “외국에 가서 순전히 자신의 지혜만으로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시를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 있다. 외교에서 시는 이처럼 중요한 작용을 한다. 외교는 정책에 앞서 인문학적 정감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