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떨어지는 나뭇잎이 내게 묻는다

입력 2017-11-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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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태어나면 입학이고 숨을 거두면 졸업인 것이 삶이다. 문득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생각을 한다. 문득 늘 함께 있었고 그 둘레 안에 살았으면서 내 앞으로 당기고 당겨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는 창밖 풍경이 오늘 나를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나를 가르치는 스승은 학교가 아니라 저 밖의 풍경들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삶이 곧 거대한 학교라는 사실에 내 생각을 곧추세우며 절친(切親)처럼 나무들을 바라본다. 사실은 거대한 학교가 자연 아닌가. 발을 조금 다쳐 외출을 못 하고 창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벌써 달포를 지나간다.

거실 창은 거대한 칠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칠판에 갖가지 그림을 보여주고 떨어지는 낙엽은 문자가 되어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조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 낙엽 소나기가 우두둑 떨어진다. 스산한 가을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입동(立冬)을 지나 만추(晩秋)다. 아니 입동을 지난 겨울 입구다. 설악을 덮은 눈 소식도 이미 오래전이다. 가을이 온다고 말할 때 나는 더웠다. 가을이 간다고 말할 때 나는 추웠다. 가을은 그렇게 내 표현의 기둥으로 계절을 느끼고 보게 한다. 하루에 급격하게 칠판의 그림은 달라진다. 그냥 노오랗더니 붉더니 아주 샛노랗더니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나무엔 잎이 두어 개만 달려 있다.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칠판의 풍경은 눈만 뜨면 내게 묻는다. 집 안의 생활, 자기 안의 움직임에 따라 살다가 창밖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만 인식하고 살아 온 일이 많았다. 무상으로 신(神)이 준 저 세상의 자연풍경은 모두 우리의 것이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문득 수억 수천의 대지와 하늘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직접 손보지 않아도 사시사철 변화를 가지며 우리에게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 그것을 길러주고 다스리는 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른다. 오늘은 거대한 학교라는 생각을 새삼 느낀다. 그래 난 무엇을 생각했는가? 영하의 추위를 견디며 새잎을 내어 놓는 장면에서 신록의 연두꽃을 볼 때 폭풍과 땡볕 안에서 근육을 키우는 녹음들, 그리고 붉게 물드는 단풍들, 그리고 더 줄 것이 없다고 고요히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그 나무와 함께 사는 바람 햇살 폭우 천둥 우박 번개들은 무엇인가?

이젠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곡진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마음을 열고 눈을 뜨고 행동을 함께하면서 목숨의 기본 공부는 세상의 자연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월든’을 남기고 스스로 하나의 자연이 되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되지 못하더라도 이 가을 학교를 바라보며 나는 살아 있다는 일에 사무친다. 두 발을 의식하지 않고 걸어 다니던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생각하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에 비해 나는 지나치게 몸 사리고 옹졸하게 살아왔다는 걸 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순국선열의 날이다. 창밖의 풍경에 감상적으로 ‘울컥’ 하는 이 감성이 부끄러운 것인가를 나는 아는가? 저 창밖에 나뭇잎 하나가 그것이 죽음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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