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친노(親勞)’ 성향을 등에 업은 금융노조가 ‘노동이사제’ 등을 앞세워 경영권 개입을 위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노조 추천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면 ‘제왕적 지주 회장’의 견제 장치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급기야 기관투자가들이 나서 노조의 이사회 장악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었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20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KB금융 노조가 사외이사 선임과 대표이사의 이사회 참여 배제를 골자로 한 주주제안서를 상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KB금융 노조는 우리사주조합 등으로부터 KB금융 주식 92만2586주(지분율 0.18%)를 위임받았다. 노조가 소수 지분으로 이 같은 안건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지분 요건이 완화돼 0.1%의 지분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노조 과도한 경영 개입…또 다른 ‘외풍’= 시장에서는 금융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이 또 다른 형태의 ‘외풍’을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앞세워 금융회사 내부 문제 해결 차원에서 정치권이나 검찰 등 ‘외풍’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의결권 자문사들은 9일 잇따라 국민은행 노조가 제안한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외국인 지분 비중이 약 70%에 달해 가결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문제는 다른 금융사에도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독려하는 전례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ISS 측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지배구조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은 “계열사에 대한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은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대부분 ISS와 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에 KB금융 노조는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 의사 정족수 확보를 위해 6일부터 본격적으로 주주 설득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3000주 이상 소유한 주주와 1주 이상 소유한 계열회사 임직원(우리사주조합원) 전체에 위임장 용지를 발송하고, 우편·이메일을 통해 노조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박홍배 KB노조위원장은 “주총 전까지는 의결권을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조의 주장이 관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영진 적폐청산 대상”…외풍 파고드는 금융노조 = 새 정부 들어 금융노조의 위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인사와 경영이 사용자 측의 고유 권한임에도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경영진 퇴진, 인선절차 중단 등의 ‘힘 과시’로 경영권을 흔들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노조는 9일 금융감독원에 현 경영진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경영진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게 특혜대출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상화 전 본부장의 특혜 승진과 관련해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금감원은 일단 사실관계 파악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3일 KB국민은행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9월 KB 노조가 윤종규 회장의 연임 찬반을 묻는 직원 설문조사에 사측이 개입했다며 은행 인사담당자 등을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에게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셀프 연임문제와 각종 인사 비리 문제를 일으키는 KEB하나은행 문제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갖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