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한때 청와대는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받아 정치 자금으로 뿌리기도 하고, ‘떡값’과 ‘용돈’에 ‘전별금’까지 주기도 했다. 지금도 어느 ‘통 큰’ 대통령은 생각했던 것보다 한 자리 수가 더 많은 돈을, 또 다른 ‘쪼잔한’ 대통령은 한 자리 수 더 작은 돈을 주더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전설’이다. 기업회계와 금융 관행이 투명해지고, 민주화와 함께 정치가 이만큼이라도 된 상황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기업 등 외부의 돈을 받아 쓰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상이 하루아침에 다 바뀌었겠나. 대통령은 여전히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사람이나 단체 만나 격려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사하고 예의 차리는 것이 다 돈이다. 이를테면 어느 고찰(古刹)에 들렀다가 낡은 화장실을 걱정하는 높은 스님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아무 말 없이 그냥 나올 수 있겠나.
해당 부처에 해 주라 지시하면 될 것 아니냐 하지만 정부 운영이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이 되어서 그런 것 하나하나를 지시하는 것도, 또 해당 부처의 예비비를 쓰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체면도 서지 않고 요건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연간 800억 원 정도 되는 청와대 예산으로는 이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결국 이런저런 방법으로 각 부처와 행정기관의 예산을 당겨쓰게 된다. 가장 대표적 방법의 하나가 행정자치부의 특별교부세 일부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특별교부세는 지방정부 간의 재정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조성되는 지방교부세의 일부이다. 지방교부세의 3%로 연간 1조 원 정도 되는데, 가뭄이나 대형사고 등 ‘특별한 재정수요’가 발생했을 경우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특별한 재정수요’에 있어 ‘특별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인데, 여기에는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관리주체인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정치적ㆍ행정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역대 청와대는 이 특별교부세의 운영에 깊이 간여해 왔다. 아예 그 일부를 청와대 몫으로 배정받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청와대의 유용한 재정적 자원이 되어 왔다는 말이다. 주고 싶은 사람이나 지역에 일종의 ‘시혜(施惠)’를 베풀면서 말이다.
청와대가 다른 기관의 돈을 당겨쓰는 또 하나의 예가 바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이다. 이 특수활동비는 사용 목적이 포괄적인 데다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아 청와대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돈이다. 주는 쪽 역시 청와대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점에서 주고 싶어 한다.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악성이다. 특별교부세만 해도 그 사용처가 명확하고 처리 과정 또한 쉽게 추적할 수 있는 데 비해 이 특수활동비는 그렇지가 못하다. 사적 유용이나 오용의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정부에 따라 이 특수활동비를 쓰기도 했고, 안 쓰기도 했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는 썼고 참여정부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정부가 썼고 어느 정부가 안 썼느냐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잘못된 관행 전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각 부처나 행정기관의 예산을 당겨쓰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대통령 초청 영빈관 행사비용 등 청와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관련 부처에 전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것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청와대가 그러지 않고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게 해 주면서 말이다.
명색이 법치국가이다. 청와대부터 형식과 실질이 달라서야 되겠나. 또 이를 그대로 두고 청와대 예산을 줄였다 자랑하면 무얼 할 것이며, 이를 깎았다고 으스대면 무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