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 경영] “너의 닉네임은?”

입력 2017-11-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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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톰” vs “○○○ 사장님” “○○○ 부장님”. ‘이름-직책’보다 닉네임을 부르면 직언의 용기가 솟는가? 호칭을 평밀이로 밀면 조직문화도 수평적이 되는가? 상사와 맞장을 뜰 수 있는가?

최근 닉네임 문화를 도입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특히 영어 닉네임이 대세다. 청와대에서 자유롭고 수평적인 소통을 위해 ‘직급-존칭’ 대신 닉네임을 사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확산일로(擴散一路)다.

보수적 직장에도 닉네임 문화가 불고 있다. 한 직원은 SNS에 “사장이 전 직원에게 닉네임을 1주일 안에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회의 때 지미(사장 닉네임)에게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면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뼈 있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름…그 만만찮은 의미

성경 창세기에서 아담의 첫 번째 임무는 이름 짓기였다.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는 방증이다.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로소 사람과 동물 간에 특별한 의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공자 역시 리더의 급선무로 정명(正名)을 꼽는다. 그는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름 명(名)은 입 구(口)와 저녁 석(夕)자가 합쳐진 글자다. 어둠 속에서도 구별시키는 정체성이 바로 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관례(冠禮)를 행하면 자(字)를 지어주었다. 그냥 지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인생 목표와 그 실천방안을 설명한 명설(名說)과 자설(字說)도 함께 지어주었다. 명자설(名字說)을 받은 사람은 그 뜻에 맞춰 살고자 했다. 고명사의(顧名思義), 날마다 그 뜻을 돌이켜보고, 그에 맞게 살았는가를 반성,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이름이 누구에게나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존재의 증명’인 이름을 얻고자, 민초들은 투쟁을 벌여야 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명종조까지만 해도 90% 이상의 백성은 이름도 성도 없이 살았다. 임진왜란 이후 족보 위조를 하면서까지 눈물겨운 ‘이름 투쟁’을 벌였다.

#용모도 이름을 따라간다

이름대로 인생이 풀린다고 한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프랑스의 안로르 셀리에 교수팀은 “사람의 외모는 이름을 따라간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프랑스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인물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름을 4~5개 보기 중 고르게 했다. 이론상 정답을 맞힐 산술적 확률이 20~25%였지만, 실제 정답률은 훨씬 높았다. “이름이 ‘스콧’이면 어딘가 모르게 ‘스콧’이라는 티가 얼굴 전체를 통해 드러나게 돼 있어 이처럼 유의미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간은 생각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을 모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속을 내보이려는 내적 동기가 있다. 내가 속한 부족이 가능한 한 빨리 나를 일원으로 인식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에 따라 용모가 이름에 맞춰 바뀌게 된다”고 지적한다.

#너의 이름은?

이름은 시인의 단골 소재다. 김춘수 시인은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소월 시인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유치환 시인은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이라고 노래했다. 빛깔과 향기에 맞춰 불러야 하는 게 이름이고, 넋과 혼을 이승으로 불러들이는 게 이름이며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게 이름이다.

닉네임 세태는 이는 고사하고 회사로 택배 온 물건도 주인을 못 찾아 헤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매일 보던 사이에 새삼 “너의 이름은?”이라고 물어보게 한다. 자기 수양, 시련과 투쟁으로 이름을 갈고닦은 선조가 오늘날의 닉네임 호칭 세태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니 가까운 미래에 후손들 용모가 영어 닉네임 따라 서구화돼 알아보시기나 할지 슬며시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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