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가운데 연준의 독립성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연준은 ‘독립성’을 지키는 게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세계적인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2일(현지시간)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파월 이사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파월 이사는 트럼프가 고민하던 차기 연준 의장 후보 중 가장 무난한 인물이다. 그는 무난하고 온건한 인물이지만 향후 그가 쥐게 된 권력은 막대하다. 세계 금융 시스템을 장악할 뿐 아니라 세계 각국 중앙은행, 재무부 장관,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트윗을 게재하는 트럼프가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을 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트럼프는 작년 대선 때부터 “연준은 정치와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독립성이 근처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버락 오바마 정부와 힐러리 클린던 민주당 후보를 위해 금리 인상을 미루고 있다는 비판을 가해왔다.
현재까지 잠잠한 트럼프이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특히 경제 회복이 트럼프의 공언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 연준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난달 19일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연준의 물가 상승 목표치는 2%이지만 현재 물가상승률은 1.3%에 머무르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에 미달하는 현재 상황은 연준의 독립이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게 한다.
1979년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13%대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을 잡고자 칼을 빼들었다. 볼커 전 의장은 경기 부진의 우려에도 단기 금리를 올렸다.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반발 여론이 커졋다. 그러나 연 15%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은 3%대로 떨어졌다. 그 덕에 1980~1990년 미국 경제가 호황을 구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정치적 압박이나 여론의 흔들림에도 연준이 독립적인 결정을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증명한 사례다.
지난 2일 파월 이사는 “연준은 통화정책 독립성의 전통에 따라 객관성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파월 이사의 말은 맞지만 연준이 그간 가격 안정성에 개입하고 실업을 유지하고자 정부와 손발을 맞춰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방향성이 올바른 것은 아니며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고 로고프 교수는 지적했다. 1920년대 말 주식 시장의 거품을 길들이려 했던 연준의 노력은 1930년대 대공황을 촉발시켰다. 연준은 대공황 초기에 행정부의 지시를 기다리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때 연준의 지배구조를 바꾼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1935년 은행법을 개정해 행정부에 있는 인물을 연준에서 배제했다. 연준 독립의 기초가 그제야 만들어진 셈이다.
파월이 트럼프 임기 초에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로고프 교수는 경고했다. 현재 주식시장은 1920년대보다 더 호황이며 이것이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로고프 교수는 “오늘날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 이용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경제 회복의 과제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그 사이에서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