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돌아가신 분이나 촌수 지위가 높은 분들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기 위해 낱글자로 풀어 말하는 것을 기휘(忌諱)라고 한다. 그런데 기휘보다 더 엄하게 이름에 사용하는 글자를 통제한 제도가 있었다. ‘피휘(避諱)’가 바로 그것이다.
‘避諱’는 각각 ‘피할 피’, ‘이름 휘’라고 훈독하는데, 왕이나 황제의 이름에 사용한 글자는 아예 일상의 문자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 피휘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신하라도 글을 지으면서 반드시 피해야 할 황제의 이름자를 피하지 않고 문장에 그대로 사용한 것이 발견되면 가혹한 벌을 받았다.
독재성이 강한 나라일수록 피휘가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중국의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피지배자인 한족들에 대한 독재가 심했고, 이런 독재를 반영하여 피휘를 하지 않은 자는 여지없이 하옥하고 심지어 참수하는 중형으로 다스렸다.
그렇다면 황제의 이름을 어떤 방법으로 피했을까? 이미 황제의 이름자로 사용된 글자를 부득이 문장에 사용해야 할 경우, 당시는 다 세로쓰기를 했으므로 줄을 바꿔 맨 위로 올려 쓴다든지 아니면 해당 글자의 모양을 다 완성하지 않고 일부 필획을 생략하여 ‘쓰다가 만’ 상태로 두는 등 반드시 그것이 황제의 이름자와 관련이 있는 글자임을 표시해야 했다. 깜빡 잊어 그런 표시 없이 글을 쓴 것이 발견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참혹한 형벌을 받았으니 이로 인해 백성들의 문자 생활이 매우 불편했음은 물론이다.
중국이 이처럼 엄격하게 피휘를 적용한 데 반해 조선의 왕들은 애당초 이름을 지을 때부터 백성들이 일상 문자 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벽자(僻字 僻:후미질 벽, 피할 벽)를 사용하거나 아예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이름을 지음으로써 백성들의 문자 생활에 가능한 한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도(李?), 정조의 이름은 이산(李?)이었다. 위대한 민본정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