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대여섯 걸음 뒤에서 할아버지를 따라가시는 할머닌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이다. “아직도 할아버지 사랑하는갑다!” 놀리면 “글씨 말이여, 여직도 할아버지 보면 설레네” 하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일품이다.
할머닌 집안이 어려워 요즘의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셨단다. 당신 나이 열여덟에 집안 어른 중매로 깊은 산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와 얼굴 한 번 보고 혼례를 올리셨단다. 하얗고 귀티 나는 남편(후보?) 얼굴이 얼마나 맘에 들었던지 집에 돌아와선 히죽히죽 웃음이 떠나질 않았단다.
할머니께선 당신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다 기울어가던 시집에 논 댓 마지기도 사드렸고, 아들 둘에 딸 셋 낳아 모두 제 짝을 찾아주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신다. 지금 이 나이에도 철철이 복숭아 농장에 봉지 싸러 다니고, 인삼 밭에 풀 뽑으러 가고, 대왕 대추도 따고 주먹만 한 밤도 주울 수 있으니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말씀도 덧붙이신다. “내 한 몸 부지런히 굴리면 자식들 신세 안 지고 끼니 해결할 수 있으니 사는 것이 고맙다” 하시는데, 그 넉넉한 마음이 부럽기만 하다.
자그마한 키에 곱슬곱슬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 얼굴에선 늘 편안한 웃음이 묻어나오고, 빨간 장화 신은 발걸음은 언제 보아도 가볍고 경쾌하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밴 분이, 이웃에 살고 있는 베트남, 중국 며느리부터 우즈벡, 네팔 노동자까지 알뜰살뜰 챙기시는 모습을 보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일전에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으로부터 다소 섬뜩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고령사회야말로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극심한 불평등 사회가 될 것이란 이야기였다. 다만 고령사회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권력 불평등 대신, 건강 불평등 혹은 노화 속도의 불평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리라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 낙관적 긍정적 마인드를 지닌 어르신들과 병약한 몸에 비관적 부정적 태도를 지닌 어르신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 대학 교수도 7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성인발달과정 연구를 토대로 귀가 솔깃한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인생의 특정 시기까지는 삶의 질을 결정할 때에 금수저냐 흙수저냐 계층적 배경도 중요하고, 인종이나 성별도 무시 못 할 영향을 미치지만, 노년기 이후의 만족스러운 삶을 규정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요인, 바로 삶을 향한 개인의 태도(attitude)만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돈을 쌓아 놓은들 잃어버린 건강을 살 수는 없는 일이요, 권력이 하늘을 찌른다 한들 행복한 삶이 보장되진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오늘도 밭에 나가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에 “여직도 할아버지 보면 설레는” 할머니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잘 나이 들어감”(ageing well)의 롤모델이 아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