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그런 것이 한두 가지일까. 특히 교육 문화부문의 행정은 안타까울 정도로 나아지는 게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주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온 말 아닌가.
문화정책에서 ‘팔 닿는 데까지만 간여한다’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은 모든 공조직의 정책이나 행정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이다. 이 불간섭의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가 전쟁청 영화위원회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도 영화 제작과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자율성을 주면서부터 확립됐다.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기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논란에서 보듯 정권은 입맛(이념이라고 포장된 그것)에 맞는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제해왔다. 그게 당연하며 그러지 않으려면 뭐 하러 집권했느냐는 말도 들린다. 박근혜 정부는 지원은 안 하고 간섭만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방식은 ①공무원 조직에 의한 정책 집행 ②예술위원회·재단 등을 통한 정책 집행 ③정부가 간여하지 않는 시장지향형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①의 상태였다가 표면상 ②로 넘어왔지만 실제로는 ①에 머물러 있다. 언제 ③으로 이행할지, 그 가능성과 시기를 점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나고 이 문제로 형사처벌까지 행해진 상황에서 대통령이 ‘팔 길이 원칙’을 말했으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지원을 하고 뒤에서 간섭하되 대놓고 간섭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꼬는 사람들이 있다. 문 대통령이 인사를 하는 걸 보면 내 편과 자기 사람만 챙기던데 문화예술 부문이라고 다를 리 있겠느냐, 팔이 안으로 굽을 거라는 비아냥이다.
5·9대선의 후보들 중 문화예술 진흥에 공을 들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당선자인 문 대통령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의 문화예술 분야 공약의 기본 정신은 공정성 투명성 자율성이며 문화예술인들이 감시받지 않고 검열받지 않으며 배제당하지 않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미지와 언어만으로는 아직 평점을 매기기 어렵다.
세계 최대 예술행사인 프랑스 아비뇽 축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예술감독이 예산 집행, 행사 내용 구성 등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아비뇽시도 예산을 지원하긴 하지만 공무원은 치안 교통 환경정비 등을 도울 뿐 앞에 나서지 않으며 시장이 행사에 간여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세계의 유수한 문화예술행사 대부분이 이렇다. 이런 걸 본받아야 한다.
문화예술계도 달라져야 한다. 전 정권에서 편파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은 건 싹 잊고 다음 정권에서 홀대받고 핍박받은 이야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정한 문화예술인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신의 일과 예술에 매진해야 한다. 정권 주변을 얼씬거리고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창작에 주력하는 사람들이 득세해서는 안 된다.
팔이 길면 지원도 잘 할 수 있지만 간섭하기에도 유리하다. 앞으로 문 대통령의 팔 길이를 더 잘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