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성남 중원구 사무실에서 만난 윤소라 유아이 대표(55·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장)는 “여성 창업률이 남성에 비해 여전히 낮은 이유는 여성에게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여성 벤처가 많이 나오려면 가정에서부터 밀어줘야 한다”며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창업가가 되라는 말보다 취직하고 빨리 시집가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윤 대표가 이끄는 유아이는 전기전자·자동차 등에 쓰이는 산업용 테이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마흔 살에 첫 창업 실패를 겪고 마흔네 살에 두 번째로 창업한 유아이는 수입에 의존하던 산업용 테이프의 국산화에 성공한 후 매출 200억 원 규모의 강소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는 올초부터 한국여성벤처협회장직을 맡으며 여성 기업인을 위한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고 있다. 윤 대표는 “성공하려면 실패는 늘 따르기 마련”이라며 “후배 여성 기업인에게 독하고 끈기 있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980년 후반 원단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일본 문무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원단 공학을 전공하고 귀국, 2001년 첫 회사를 차렸다. 거래처로부터 오더를 받아 OEM 생산 후 납품을 하는 섬유 회사였다. 회사는 1년 만에 망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 의류공장들이 붉은악마 티셔츠를 찍어내느라 윤 대표가 받아온 오더가 계속 연기돼 신용을 잃고 거래가 하나 둘씩 끊겼기 때문이다. 3억여 원의 빚을 졌다. 당시로서는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남편도 갓 사업을 시작하고, 연년생 두 자녀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전기전자 부품을 수출입하는 무역회사에 비서로 취직했다. 정시 퇴근하면 어린 자녀를 보고 집안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서로 일하면서 일머리를 인정받아 곧바로 무역팀장 자리를 꿰차게 됐다.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인 산업용 테이프를 처음 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산업용 테이프는 의류 원단처럼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되는 소재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윤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그 자신은 ‘욕심이 많지만 운도 좋은 편’이었다. 연년생 자녀를 출산한 후 2001년 처음 시도한 창업이 1년 만에 실패한 뒤 줄곧 창업 재도전을 꿈꾸던 그에게 남편은 “세 번까지는 밀어줄테니 재도전해보라”고 독려했다. 그의 일 욕심과 이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두 번째 사업은 준비를 완벽하게 하려고 애썼다”는 그는 “퇴근하고 밤마다 전기전자에 관한 두꺼운 기술서 몇 권을 고시 공부하듯이 익혀나갔다”고 돌이켰다.
2005년 말 4년간 일한 회사를 그만둔 그는 필름 부문에서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 세이스키사를 찾아가 제휴를 맺고 이듬해 유아이를 설립했다. 산업용 테이프를 사용해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국내 협력사들의 수요를 철저히 분석한 후, 다시 기술력과 공장을 보유한 세이스키사에서 제품을 생산해 들여와 국내 협력사들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LCD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차광용 테이프가 히트를 치면서 매출을 끌어올렸다. 제품을 수입하는 데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3년 후 평택에 공장을 짓고 직접 제조를 시작했다. 나사로 조여서 부품을 조립하던 기존 방식의 전자제품이 점차 얇아지고 슬림화하면서 산업용 테이프 수요로 전환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이후 랩톱과 모니터 등 전기전자용 테이프에서 자동차 부품용 테이프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평택에 이어 화성에도 제조시설을 마련했다.
윤 대표는 2차전지와 배터리 부문을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다. 산업의 동력이 전기로 전환되는 트렌드를 캐치해 관련 연구개발(R&D)에 주력하는 중이다.
윤 대표는 “산업용 테이프는 굉장히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기간이 되는 소재로 잠재력이 무한하다”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트렌드에 대응하고 기술력을 발전시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3M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