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공유경제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각국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이미 독일은 지난 2011년 4차 산업혁명 정책의 효시로 불리는 ‘인더스트리 4.0’을 발표했고, 중국은 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의 중점과제로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천명하는 등 각국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이어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다소 늦은 감마저 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IT 혁명과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도 ‘차고(車庫)’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의 활기넘치고 도전적인 모험정신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정부가 정책을 정하고 이끈다고 해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인도 등 전 세계에서 젊은 기업인이 스타트업을 세워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가운데 한국은 창업 인프라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창업을 꿈꾸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는 것이다.
현재 IT 혁신을 주도하고 4차 산업혁명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애플 구글 아마존닷컴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은 모두 차고에서 탄생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한창 잘나갔던 1998년 초 한 인터뷰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도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군가 차고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고안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당시 스탠퍼드대 출신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차고에서 구글을 설립했다.
이런 차고 성공신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스타트업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무기로 혁명을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20세기 제조업은 규격에 맞는 제품을 싸게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으나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화한 21세기는 각자의 취미와 기호에 맞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며 이에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는 사업구조의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성장할 여지가 더욱 있다고 분석했다.
400억 달러가 넘는 기업가치로 비상장 벤처기업 중 세계 1위인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글로벌 상업용 드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DJI 등은 모두 역사가 10년 안팎으로 짧지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 모두 정부의 정책으로 성공했다기 보다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과감한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자수성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도 IT 서비스 업체 테크마힌드라는 지난해 초 이른바 ‘차고 스타트업(Garage Startup)’에 2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테크마힌드라의 C.P. 구르나니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가상현실(VR)을 연구하는 캘리포니아의 한 신생기업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인도에서는 데이터센터 자동화를 모색하는 벤처기업에 500만 달러를 투입했다”며 “이런 차고 스타트업들은 장기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핵심적인 사상가(Thinker)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투자는 고객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며 “고객은 더 높은 생산성과 효율, 그리고 더 많은 가치창출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차고 성공신화는 이제 실리콘밸리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 스타트업이 밀집한 중관촌(中關村)의 ‘창업거리’에는 지난 2011년 ‘차고 카페’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창업카페와 벤처 인큐베이터들이 속속 들어섰다.
인도는 낡고 허름한 아파트가 창업가들의 차고 역할을 한다.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플립카트의 시작은 벵갈루루에 있는 방 2칸의 임대 아파트였다. 아마존 출신의 사친 반살과 비니 반살이 지난 2007년 이 아파트에서 40만 루피(약 700만 원)의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플립카트가 받은 첫 주문은 존 우드의 저서 ‘MS를 떠나 세상을 바꾸다(국내명 히말라야 도서관)’였다.
택시 앱 업체 택시포슈어(TaxiForSure)’는 벵갈루루의 아파트 옥탑방에서 출발했다. 경쟁사인 올라가 지난 2015년 2억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면서 공동 설립자인 라그후난단 G. 와 아프라메야 라드하크리쉬나는 돈방석에 앉게 됐다. 이들은 창업 초기 직원들이 한창 근무하는 옥탑방이 너무 좁아 아예 옥상에 테이블을 갖다놓고 투자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한편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WeWork)는 8월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로부터 총 44억 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특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위워크에 손정의가 통큰 베팅을 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혁신을 창출하는 ‘공간’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풀이했다. 위워크는 세련된 디자인의 사무공간을 스타트업, 또는 이들과의 연계를 모색하는 대기업들에 제공한다. 스티브 잡스와 게이츠가 허름한 차고에서 소수의 동료들과 비교적 고독한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위워크는 이른바 ‘열린 차고’라고 할 수 있겠다. 젊고 야망에 찬 사업가들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위워크는 지난해 말 기준 8만5000명 이상의 회원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의 4만5000명에서 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을 직접 육성하려는 것보다 ‘차고 혁명’과 같은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우치 신야(大內伸哉) 고베대학 교수는 8월 말 닛케이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차고 혁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근로자들을 몰락하는 업종에서 성장 부문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고용시장의 유연화를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해고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불필요한 인력을 정리해 사업전환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부는 해고 근로자의 생활 보장과 함께 성장 부문에 재배치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이전에는 정부와 개인 모두 기술훈련을 기업에 의존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숨가쁘게 등장하고 지적인 창의력이 절실해진 오늘날에는 그럴 수 없다”며 “정부가 미래산업에 필요한 인재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