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사업 전략 세운 CMA-CGM…보고만 6단계 거치는 현대상선
프랑스 해운사 CMA-CGM은 2009년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글로벌 3위 해운사로 거듭났다. CMA-CGM 구조조정은 큰 틀에서 한국과 같았지만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가 프랑스 해운 산업을 되살렸다.
CMA-CGM이 2009년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전략투자 펀드(FSI)’를 통해 자금 지원에 나섰다. FSI는 2008년 금융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만든 펀드다. FSI의 자금 구성을 보면 CDC(프랑스 공공 금융기관) 51%, 정부 자본 49%로 이루어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프랑스 기업들이 펀드 설립에 참여했다”며 “금융위기 때 프랑스 중소기업을 육성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프랑스 구조조정의 결정적 차이는 지원 규모와 방식이다. CMA-CGM은 대규모 유동성 지원을 먼저 받은 뒤 비용절감에 돌입했다. 이때 FSI가 CMA-CGM에 집행한 자금만 1억5000만 달러(약 1696억 원)에 달한다. 채권은행들의 추가 지원은 제외한 금액이다. 이를 바탕으로 CMA-CGM은 대형선 발주, 노후·고비용 선박 정리, 인수·합병(M&A)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서 10년 만에 세계 3위에 올랐다.
반면 한국은 구조조정 지원 규모를 최소한으로 산정한다. 정부가 현대상선 등 해운업을 위해 조성한 선박 신조 프로그램 규모는 2조6000억 원 수준이다. 이마저 공공기관과 국책은행 간 보증, 지원 분담액을 두고 차질을 빚었다. 지원 규모도 적고 자금 집행은 길어지다 보니 구조조정 기업이 정작 투자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의 구조조정은 ‘단기 유동성 제공→ 비용절감과 자산 유동화를 통한 중장기 유동성 자체 확보→ 시장회복에 따른 정상화 기대’ 순으로 진행한다”며 “당초 CMA-CGM과 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이 결국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운업계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터미널 인수전에서 SM상선에 밀린 배경도 같은 논리로 본다.
재계는 무엇보다 두 국가의 정부 역할이 구조조정 기업의 운명을 가른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는 정부의 역할을 금융 지원에 한정했다. 자금을 집행한 뒤 경영전략은 전적으로 해운사에 맡겼다. 재계가 지적하는 현 구조조정의 핵심 문제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의 구조조정은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명분으로 구조조정 집행 과정에 사실상 정부가(산업은행) 개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상선은 경영진이 투자와 사업 전략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자금과 투자 대상을 논의하면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 결재를 올려야 한다. 산업은행 구조조정실은 다시 구조조정부문 부행장에게 보고하고, 부행장은 회장에게 결재를 올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주요 사안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해야한다.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사무처장을 거쳐 차관)에게, 다시 장관에게 보고를 올린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에 초대형 유조선(VLCC)을 발주한 것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 전략은 구조조정 기업이 직접 판단하도록 맡기고 자금 지원 규모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고문헌
<경제위기의 사회학>, 김은미·장덕진,
<위기를 쏘다>, 이헌재,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구조조조정 정책금융에 관한 소고,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도움
해양수산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구조조정을 겪은 대기업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