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초대형IB 육성방안’을 포함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올 들어 시행됐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요건을 갖춘 국내 대형 5개 증권사들은 초대형IB로 거듭나기 위해 금융당국의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발행어음에 대한 인가가 완료되면, 증권사들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음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과연 글로벌IB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맷집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감도 제기된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에게 국내 초대형 IB가 가야할 방향과 갖춰야 할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12년간 국내 IB 역사와 함께 달려온 베테랑급 전문가다.
정 대표는 초대형IB가 초석을 다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리스크 관리 △안정적 수신 △다양한 운용 등 3가지를 짚었다. 그는 “초대형IB가 제대로 정착하려먼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디폴드(채무불이행) 리크스를 피해가는 것이 중요한데, 은행은 부도가 나면 담보를 처분하면 되지만, 투자은행의 경우 사업성의 신뢰도, 현금흐름의 차입금 지불 가능여부 등 신용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맞는 방식과 기준으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투자은행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주식, 채권 등은 모두 시가(市價)가 존재한다”면서 “은행과 같은 고정된 금리가 아닌 가격의 변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리스크 관리에 이어 자금 수요자(발행기업)와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이를 통한 안전한 자산 관리, 다양한 기회 창출 등도 필요하다”면서 “여기에 자본 축적의 근간이 되는 수신 안정화를 위해 고객 기반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기자본력도 강조를 빼놓지 않았다. 정 대표는 “골드만 삭스 등 글로벌IB들은 “우리 자본의 10배 이상이며, 국내 기업조차도 글로벌화 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4조 원 기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이같은 미스 매칭된 부분이 해소가 되어야 균형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향후 이어질 규모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전 부문에 걸쳐 글로벌IB보다 경쟁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대한민국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것인 만큼,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가장 적합한 상품을 신속하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며 “아울러 우리 기업과 관련된 사업 파트너들과 네트워크를 다지며 점진적으로 경쟁이 가능한 분야부터 영역을 넓혀가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글로벌IB 중 벤치마킹 대상을 묻자, 그는 ‘골드만 삭스’를 꼽았다. 모건스탠리, JP모건 등의 은행보다 기업 네트워크, 인수·합병(M&A), 자문(어드바이저리) 등 좀 더 정통적인 투자은행 모델을 이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정 대표는 최근 들어 대체투자가 활성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짚어줬다. 그는 “대체투자는 기업이 부수익, 비핵심 자산을 핵심자산으로 바꾸며 현금 흐름을 안정된 구조로 만드는 것”이라며 “과거보다 성장이 둔화되고 시장이 고도화되다 보니 자금이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며, 이에 앞서 기업의 요구를 상품화 가능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컨설팅 비즈니스가 발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투자은행 방향과는 다소 다른 규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대표는 “정책 당국이 예금자본법을 근간으로 한 은행업을 중심으로 규제를 하다보니, 사전적 규제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예를 들면 차이니즈 월(정보교류 차단 장치)의 경우, 우리들이 자문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리서치 페이퍼 작성은 물론 투자 등 비즈니스를 못 하도록 사전에 통제를 하는 반면, 해외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통제하는 사후적 징벌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정 대표는 지난 12년간 서서히 발전해 온 IB 역사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흐름도 내다봤다. 그는 “2000년 초·중반 IB는 단순한 브로커리지에서 언더라이팅(유가증권 인수)로 살짝 넘어오는 과정에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혁신보다는 영역 확장 등 지속적인 성장과 개선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덧붙여 가만히 있어도 성장할 수 있는 5~6% 대의 경쟁성장률이 2% 초반대로 떨어지다 보니, 핵심자산에 집중을 해야하는 대체투자, 기업들의 자문역할을 해주는 어드바이저리 등의 분야가 추가된 것”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대마불사 법칙’은 깨졌고, 리스크에 대한 필요성도 더욱 부각돼다보니 기업들도 대체투자 개념으로 우량 설비에 투자를 하게 되는 셈”이라며 “이에 맞춰 증권사도 투자은행에서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변화는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