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지배구조①] ‘600조 운용’ 이사장, 독립성 확보 가능할까

입력 2017-10-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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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기준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600조 원을 넘어섰다. 일본의 공적연금펀드(GPIF)와 노르웨이의 국부펀드(GPF)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 270여 곳에 달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 자본시장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은 시장을 주도하고 세팅하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인구구조상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이 팽배하지만 600조 원을 재투자하는 방식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지난해 최순실 사태와 이후 관련자 처리 과정에서는 기금 운용과 관련해 부실한 의사결정 구조가 드러나기도 했다.

새 정부는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사장 선임부터 기금 운용 의사결정 체계 개편까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국내 자본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전주로 내려가면서 생긴 업계와의 물리적·심리적 간극도 극복해야 할 숙제다.

◇15명 역대 이사장 중 절반이 장·차관 = 1987년 국민연금 설립 이후 이사장은 대부분 정권의 보은 인사들이 차지했다. 제1대 장원찬 이사장은 고등고시 10회 검사 출신으로 서울시 제2부 시장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 때 심유선(2대), 이상수(3대) 이사장은 군 사단장 출신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으로 복지 분야 관료 출신인 조기욱 이사장이 선임됐다. 그러나 조 이사장이 3년 임기를 마친 후에는 다시 김영삼 대통령의 총무비서관 출신인 김태환 이사장이 발탁됐다.

제6대 최선정 이사장부터는 명목상으로나마 보건복지 분야 연관성 있는 인물들이 이사장직을 맡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이사장 발탁 전후로 연금의 주무부서인 복지부 장·차관을 맡는 등 독립성·낙하산 논란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최 이사장은 취임 3개월 만에 복지부 차관에 임명돼 국민연금을 떠났고 이후엔 장관까지 역임했다. 최 이사장 후임인 제7대 전계휴 이사장 역시 복지부 차관 출신이었고 제8대 차흥봉 이사장도 취임 3개월 만에 복지부 장관으로 자리를 비웠다.

이후에도 장석준(10대), 김호식(11대), 전광우(13대), 최광(14대), 문형표(15대) 이사장이 모두 정부에서 차관 또는 장관을 역임한 후 국민연금 이사장직을 맡았다. 유일하게 업계 출신인 12대 박해춘 이사장 역시 이명박 정부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로 알려졌다.

기금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정권의 개입도 구체화되면서 초유의 비리가 터지기도 했다. 지난해 말 문형표 전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공약집에서 “특정 재벌이 433억 원의 뇌물로 3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지분을 사유화 했다”며 “국민연금 이사장은 가장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를 임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 때보다 이사장 선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사장 자리는 10개월째 공석인 상태다.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연금 독립성·전문성 제고할까 = 새 정부는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러한 방안을 논의하고 내년 국회에서 법안심사를 받을 계획이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그러나 상설기구가 아니어서 1년에 몇 차례 열리는 데 그치고 각계 20명으로 구성된 위원들이 상정된 안건도 심도 있게 논의하지 못했다. 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관계부처 차관, 국민연금 이사장, 사용자·근로자·가입자 대표 등이 참여하지만 이 중에서도 정부 당연직 위원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정부에서 임명하는 일부 위촉위원들까지 합하면 사실상 정부가 기금운용 계획을 주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복지부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개편안을 마련한다. 정부 당연직을 2~3명으로 축소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현재 가입자대표 성격인 구조를 상근자가 포함된 전문가 집단으로 바꿀지도 주목된다. 다만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공사화하는 방안은 보류한 상황이다.

대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법적기구로 만든다. 현재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지침에 따르면 연금의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의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행사한다. 현재 전문위는 기금운용본부가 요청한 안건만 심의할 수 있을 뿐 개별 안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검토가 불가능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도 전문위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개편만큼이나 기금운용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를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 기금운용위에 참여하는 인사는 이사장이 유일한데 운용과 관련한 철학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면 운용업계가 각계각층 민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독립성 확보만큼이나 전문성 있는 인사 영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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