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력을 인정받은 A중소기업은 B대기업과 납품계약을 체결했다가 경영난에 시달려야했다. 납품 후 약 3년간 사후관리를 약속받았지만, 하루아침에 거래중단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B대기업이 자사 핵심기술을 훔쳐 자체 제품 개발에 들어간 것. 기술을 유용당한 A사는 거래 중단에 따른 경영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 봤지만 결국 자금난을 견딜 수 없었다. A사는 뒤늦게 관련사건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으나‘조사시효 3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해 하도급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 D대기업으로 부터 기술 탈취를 경험한 C중소기업은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했다. 상대 대기업이 협약평가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있어 ‘직권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C중기 사장이 알아본 결과, 거래하고 있는 대기업은 3년간 공정거래 협약제도 등 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았다. 최우수와 우수등급 평가 기업에게는 각각 2년과 1년 동안 직권조사 면제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C업체 사장은 “중소기업 기술을 빼내 자체 생산으로 돌리면 중기들은 먹고 살 터전을 잃어버린다. 소송전도 오랜시간이 걸리는 만큼, 결국 부도위기에 내몰린다”며 “이런 마당에 갑질 대기업에게는 직권조사 면제 혜택을 주고 있으니 누굴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자료 유출, 경영정보 요구 등과 관련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유용 조사시효를 7년으로 연장한다. 또 수년간 직권조사를 면제받는 대기업의 공정거래 협약 인센티브도‘기술탈취’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유용행위 근절 대책’을 마련, 당정 협의를 통해 추진키로 했다.
지난해 공정위가 기술탈취와 관련한 서면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기술자료를 요구한 원사업자는 88개사에 달한다.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부가 공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는 최근 3년간 기술유출 피해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은 52개사로 집계됐다.
주된 유형은 대기업이 협력사인 중소기업의 ‘공정 프로세스 및 설명서, 제품 설계도’ 등 관련 기술자료 일체를 요구하는 경우다. 대기업이 수급사업자의 세부원가내역서 등 경영정보를 요구한 후 단가 책정을 경우도 있었다.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해 대기업이 공동 특허출원을 요구한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이를 잡기 위한 집행체계가 역부족이라 점이다. 공정위의 조치실적을 보면, 기술유용과 부당 기술요구 사건 처리는 2건에 불과하다.
특히 주요 대기업들은 기술탈취행위에 면죄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협약평가 대상 기업 중 49%는 직권조사 면제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총 133개사 중 66개사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공정거래 협약제도 우수기업에 선정된 대기업도 기술유용에 한해 직권조사 면제를 없애기로 했다.
협약평가 우수기업의 기술자료 요구·유용 조사는 12월 협약기준 개정 후 민원만으로도 현장조사가 가능해진다.
현행 기술탈취 조사시효가 3년에 불과한 하도급법도 10월경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기술유용이 수년에 걸쳐 은밀하고 뒤늦게 드러나는 만큼, ‘목적물 납품 후 3년’에서 ‘7년’으로 늘린다.
성경제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기술유용의 적발 가능성 및 제재수준 향상으로 ‘위법행위 적발에 따른 손해’가 ‘기술유용으로 얻게 되는 기대이익’ 보다 커져 법위반 유인이 억제될 것”이라며 “제도적 기반강화로 편법적·우회적 기술유용을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