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이야기] 주례

입력 2017-09-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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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에 TV 프로그램에서 처음 주례를 섰다. 양쪽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하는 커플이었는데 10년쯤 후에 그 딸의 주례까지 섰으니 부녀의 결혼식 주례를 함께 선 드문 인연이다. 제자인 캠퍼스 커플, 세 쌍의 남매, 나하고 나이차도 별로 나지 않는 건축가 Y 씨의 주례까지 참 많은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다.

최근에는 여성이나 부부가 주례를 맡는 경우도 있는데 주례는 평소에 신랑 신부를 잘 알고 결혼식 이후에도 원만한 결혼 생활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인생 멘토가 적임자가 아닐까? 학식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인격까지 모두 갖춘 훌륭한 분으로 소개들을 하지만 하객 앞에서 주례의 사회적 지위나 관계를 과시하는 결혼식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부모와의 친분으로 자녀들의 결혼식 주례를 많이 서기도 하지만 내가 신랑 신부를 잘 아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식을 마친 후 연락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자식들의 결혼식 주례로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자녀들이 정말 주례로 모시고 싶은 분께 부탁을 해보라고 사양한다. 식장에 들어서서야 신랑 신부를 처음 만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의례적인 얘기나 늘어놓는 주례를 세우는 속사정이 있겠지만 그런 경우야말로 주례가 없는 결혼식도 나쁘지 않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사회자의 역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개그맨이나 아나운서를 파견해 준다는 회사까지 생겨나고 있다.

개성 있는 결혼식은 좋지만 무조건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결혼식, 주례 없는 결혼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례도 요즘은 인터넷에서 약력과 사진을 보고 돈 주고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주례를 부탁할 사람도 없고 또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서 오히려 돈 주고 사는 주례가 편하다는 사람들도 이해는 되지만 이제 주례도 서비스 상품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주례를 선 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소식을 전하고 명절 때면 꼭 선물을 보내오는 이도 있는데 선물은 사실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이가 빛의 속도로 기고 있어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하면서 소식을 전해올 때는 정말 기쁘고 주례 선 보람을 느낀다.

주례사가 주례 역할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슴에 와 닿는 주례사를 듣기가 어렵다. 지나치게 길고 진부한 주례사는 하객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도 잘 듣지 않는다. 부모, 신랑 신부의 약력이나 인연을 과시하고 멋있는 인용구로 한껏 멋을 부리거나 심지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주례사는 하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한다.

결혼식 전에 신랑 신부를 꼭 만나 결혼식 준비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준비를 위한 조언을 해 주기에 주례사는 짧게 하는 편이다. 지나치게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얘기보다는 실질적인 얘기를 해 주면서 혼인서약서만큼은 신랑 신부가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매년 그 내용을 되돌아보기를 권유한다.

결혼식장에 늦어도 30분 전까지는 도착해 신랑 신부와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사회자가 결혼식을 망치지 않도록 진중하게 예를 갖추도록 신랑 신부에게 미리 주문도 하고 눈물로 신부 화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양가 부모님께 인사’ 순서는 일부러 건조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신랑 신부의 결혼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양가 부모님에 대한 당부를 덧붙이기도 하는데 신랑 신부나 양가 부모님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례를 서 준 부부로부터 존경까지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주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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