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글로벌 M&A에 주저하지 않는 것은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인하우스(내부 조직)에서 신사업이나 기술 혁신 등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기술 변화는 대기업들이 이러한 정태된 환경에서는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LG전자가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업체인 ZKW 인수를 위해 1조 원 이상을 베팅한 것은 국내 재계 역사에서 이례적이다. LG그룹의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은 M&A에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국내외 기업을 적극 인수하기 보다는 내부 및 국내에서 역량을 키우는 것이 LG그룹 구 씨 일가의 시각이었다.
LG그룹이 지난해 동부팜한농(현 팜한농)을 인수한 것은 구 회장이 ‘종자사업 주권’에 중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LG그룹은 팜한농 실사에 수백 명을 투입하며 감사 수준의 실사를 벌인 것은 업계에 익히 알려져있다. 이러한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LG전자가 수년 전부터 차량용 조명업체 인수를 추진한 것은 그만큼 그룹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휴대폰 사업이 수년 째 적자를 보면서 자동차 전장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미 LG전자는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피아트크라이슬러 오토모티브(FCA)의 부품 계열사인 마그네티 마렐리의 조명사업만 분할 인수하는 것을 타진하기도 했다. 당시 매각자 측에서 분할 매각을 추진하지 않은 데다, LG전자도 높은 매매가격 부담에 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LG그룹 내부에서는 더 이상 글로벌 M&A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LG가 ZKW 인수를 위해 경쟁사 대비 높은 가격을 베팅할 가능성이 적지는 않은 상황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과연 LG그룹이 1조 원 중후반대를 적어낼 수 있을지가 인수 성공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 이외에는 SK그룹은 11번가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해당 그룹은 내부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SK케미칼이 SK건설 지분을 (주)SK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최근 STX엔진 인수에 참여하며 M&A 시도를 멈추지 않은 상황이다.
LG, SK, 한화 등의 적극적인 M&A 추진 행보와 달리 삼성그룹은 당분간 조 원대가 넘는 기업 인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을 받으면서 대규모 자금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있는 기업은 총수가 구속 중인 상황에서는 경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빅딜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