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한 집 건너 치킨 매장이 자리 잡으면서 치킨공화국이 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도축된 닭은 10억 마리에 육박한다. 우리 국민 1인당 한 해 동안 20마리씩 먹은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인 줄만 알았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밀려나 준비하지 않은 퇴직을 맞은 사람들, 본격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자영업자가 되면서 치킨집이 줄줄이 문을 열었다.
이제는 자영업 레드오션의 대명사가 됐지만, 한 빅데이터 업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치킨이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를 분석해 “치킨 소비와 사회적인 행복도가 비례한다”는 결론을 낼 정도로 치킨은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위로가 되는 음식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AI로 3000여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되면서 판매 부진을 겪었던 치킨 자영업자들은 이번에 덮친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이미 산란계 농장 닭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전국적으로 육계(닭고기용)로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만에 하나, 육계농가 단 한 곳에서라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될 경우 닭고기 소비는 급전직하(急轉直下)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치킨집은 물론이고 닭고기를 쓰는 외식업계, 식품업계까지 초토화할 가능성이 높다.
AI 사태가 터질 때마다 산란계 농장 사육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늘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이제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축산 돌림병에 가축들을 더 이상 생매장해서는 안 된다. 동물복지형 축산 농장 등 사육 시설 개선을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가금류 동물복지 농장의 경우 사육 면적이 3배가량 넓어 볕을 쬐면서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알을 낳게 하려고 밤에 잠을 못 자게 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국 5600여 양계장 중 동물복지 시설은 2% 남짓에 불과하다. 동물복지형 농장으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요소는 다름 아닌 투자 부담과 생산성 감소, 즉 경제적인 문제이다. 계란 가격이 지금보다 올라야 하는 이유이다.
한꺼번에 많은 닭을 키워 양적으로 승부를 내는 양계 산업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되다 보니 우리 모두 값싼 계란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1960~70년대 도시락 반찬에 계란 프라이를 싸오는 친구가 부잣집에 살 거라고 인식됐던 것은 그만큼 계란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2017년 현재, 계란 한 알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약 300원이다. 1986년 76원에 비해 3.9배 인상되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짜장면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5000원으로 1986년(647원)에 비해 7.7배나 올랐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 1988년 487원에 비해 13.2배 상승했다. 1988년에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계란 6.4개 살 수 있는 반면, 2016년에는 21.5개나 살 수 있다.(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 자료)
소비자들도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지금보다 비싼 계란 값을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신세대들이 이만큼 체력과 체격을 갖출 수 있도록 값싼 단백질 공급원을 뒷받침해준 양계 농가가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되돌려주는 게 맞다.
행동주의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라고 했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을 넘는다는데, 심지어 로봇과도 공감하는 단계에 이른 마당에 동물복지에 대한 공감도 확산할 만한 시점이 됐다.
정부도 획기적인 위생 및 안전관리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번 살충제 사태를 비롯해 일회용 생리대 논란 등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보여준 안전한 국가에 대한 대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새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57번이 ‘생활안전 강화’라고 한다.
국민들의 희망사항은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먹거리(달걀)나 생활용품(생리대) 등이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 아래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유통되길 바랄 뿐이다. ‘포비아 공화국’이 돼 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는 배경음악으로만 그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