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살충제 계란이 남긴 것

입력 2017-08-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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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계란 때문에 난리다. 이름도 생소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더니, 이제는 50대 이상에게는 이름이 익숙한 DDT까지 검출됐단다. 그런데 이 DDT는 반감기(半減期)가 길어 DDT 사용 금지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에 사용했던 DDT 성분이 아직도 흙 속에 남아 있다가 검출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지금 우리 국민들은 계란 때문에 뒤숭숭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때아닌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으니 국민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논쟁은 이렇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이번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 중에는 이른바 친환경 계란으로 인증받은 것들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바로 이 점을 들어 살충제 계란 문제는 전(前) 정부의 잘못이라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살충제 계란에 친환경 인증을 해준 민간 업체들은 대부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이라며 “이전 정부의 관료 출신으로, 퇴직 후 관피아들의 회전문 낙하산 인사, 이른바 ‘농피아 적폐’가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국 국민의 식품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이전 정부의 책임”이라며 “무조건 현 정부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서 벗어나 대책 마련에 협조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주장에는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방식으로 친환경 인증을 해주었느냐부터 짚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민주당의 주장처럼 ‘농피아’와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농피아’와의 연관성이 드러날 경우, 이는 분명 과거 정권의 적폐임은 분명하다. 과거 정권들이 식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확실하다. 식품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일은 애초부터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또 다른 심각성이 있다. 과거 정권의 잘못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일의 수습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계란을 생산해내는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조사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그 뒤에 나름 정확하게 조사하려고 했다지만, 오락가락하는 정부 발표와 조치 때문에 국민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에서 나타났던 불신 풍조를 새 정부가 다시금 불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살충제 계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신뢰가 가는 정부의 대책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태가 발생하면 정치권은 좀 겸손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책임이고 잘못이라고 나서면 그나마 국민의 불안이 좀 덜할 텐데, 서로 네 탓이라는 책임 공방만을 벌이고 있으니 국민의 입장에선 믿고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신뢰’는 시민사회에서의 사회자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다. 그리고 지난 정권이 국정농단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망가뜨렸기에 이런 신뢰의 회복이 우리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서 새 정부는 신뢰를 다시 만들어 가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적폐 청산도 이런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 때문에 다시금 신뢰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는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거기부터 다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신뢰의 씨앗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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