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출범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공약 일부는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특히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공약의 일환으로 선택약정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겠다는 정부 방침은 업계와의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의 공신 중 한 명인 최민희 전 국회의원에게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그리고 공약 설계를 주도했던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해 들어봤다.
◇“文 정부, 강온양면 정책 구사… 고마워요, 문재인!” = 최 전 의원은 17일 늦은 오후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이투데이 인터뷰에서 먼저 이날 출범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평을 쏟아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국방·안보·외교 국정 파트는 보수적으로, 검찰과 국가정보원 개혁 등은 본래 페이스대로 근본적인 개혁을 이끌면서 강온양면(强穩兩面) 방식을 적절히 구사하며 잘 이끌어왔다”고 평했다. 이어 “무엇보다 국민이 ‘정권교체 이후에 내 삶이 바뀔 것’이란 응답이 50%를 넘은 건 이번 정권이 처음”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율은 출렁일지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폐지하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교사 두 분의 순직을 인정한 점 등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한 건 굉장히 잘했다”며 “시도 때도 없이, 걱정될 정도로 국민과 소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살짝 웃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최 전 의원의 감회는 간단히 줄이면 이렇다. “고마워요, 문재인.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는 다시 없을 겁니다.” 포털사이트 누리꾼들의 표현을 따서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문 대통령을 잃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타공인 친노무현계 인사였고, 친문재인계 사람인 최 전 의원이 이렇듯 문재인 정부의 ‘순항’을 기뻐하는 건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방송위위원회 부위원장을, 노무현재단에서 상임운영위원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엔 야권 대통합 운동을 벌인 ‘국민의 명령’, ‘혁신과 통합’ 등에 몸담았다.
최 전 의원은 “배우 문성근 씨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정권교체가 꼭 돼야 하는데 야권이 분열돼 있다’며 통합운동을 하자고 제안해 2010년부터 함께 ‘국민의 명령’ 운동을 했고, ‘혁신과 통합’을 만들고, 민주통합당으로 합쳐 2012년 총선을 치렀지만 졌다”며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만들기엔 성공했지만 선거에서 지고, 다시 친노·친문 의원들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계속해서 성공했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는 내 할 일을 다한 듯하면서도, ‘이제 뭐하지’ 하는 행복한 패닉에 빠졌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발탁, 새 정부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함께했다. 최 전 의원은 “(국정자문위에서) 공직자들의 유능함이 열정으로 바뀌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공무원들의 유능함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기술관료)적 유능함으로, 새로운 시민 시대 국가를 만드는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주요 과제”라고 설파했다.
◇“통신비 선택할인율 상향, 이통사들 소송해도 끝까지 간다” = 최 전 의원이 국정자문위 경제2분과 위원으로서 가장 공을 들인 건 문 대통령의 공약인 통신비 인하 방안 마련이다.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꾼 미래창조과학부를 향해 통신비 인하 정책 마련에 의지가 없다고 공개 경고하는 등 관료들과 강하게 맞붙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최 전 의원은 “통신비 인하안을 갖고 오라고 했더니 미래부가 첫 대면보고에서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인하 못 한다고 했다”며 “세 차례를 참았는데, 장차관이 새로 임명되면 그때 그분들께 보고하겠다는 말에 업무 보고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미래부가 하나씩 안을 가져오더라”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뒤 국정자문위에서 검토한 통신비 인하 방안이 △고등학교·버스 등에 공격적인 공용와이파이 확대 △2G·3G의 기본료 폐지 △단말기 가격 인하 등이다.
이 가운데 공용와이파이 확대는 추진 중이고, 기본료 폐지는 저소득층과 어르신 등에 우선 추진된다. 여기에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의 근거인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개정, 보편요금제 도입은 입법 사항으로 국회로 공이 넘어가 있다.
현재 핫이슈는 통신요금의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다. 최 전 의원의 채찍을 맞았던 미래부가 내놓은 작품이지만, 이동통신사들이 행정소송까지 거론하는 등 강력히 반발해 진통 중이다.
최 전 의원은 “우리가 시행령 안에서 최고조로 올릴 수 있는 할인율이 25%”라면서 “시행령 테두리 안에서 정부가 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인데, 그간 담합 구조에서 특혜를 누려온 통신사들이 공권력에 대응하겠다면 아주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송에 들어가도 정부는 대응해서 끝까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MB는 방송 장악, 朴은 혜택 누려… 법과 원칙 속 정상화돼야” = 최 전 의원의 본래 ‘전공’은 언론 분야이다. 월간 <말>지 1호 기자로 시작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총장, 대표 등을 지낸 언론개혁 운동가 출신이다. 이 전공을 살려 19대 국회에선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서 ‘언론 정상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방송 장악’이 이뤄졌다고 성토하고는, 최근 KBS와 MBC 일부 기자들의 제작 거부 선언으로 촉발된 이른바 ‘공영방송 정상화’ 움직임에 응원을 보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내고자 이사회의 여야 구성을 바꾸는 등 법과 원칙을 훼손하면서 방송 장악을 했고,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장악해 놓은 방송의 달콤함에 젖어 있다가 탄핵 사태까지 갔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악한 방송의 혜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언론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정권에 치명적”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기에 내게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의 감시가 너무 심해서 큰 사고 칠 수 없는 조건에서 5년을 보냈으니 역설적으로 고맙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장겸 MBC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공영방송을 망친 자들이 민주주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처럼 할 순 없다”며 “정부는 11월부터 이뤄지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해야 하고, 방송사 내부에서도 고치려는 힘이 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최민희 전 의원은 원외에 머무르고 있는 데에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국회에서 방송 장악 문제뿐 아니라 정당 혁신을 위한 제도 마련에도 힘썼다”며 “19대 국회에서 온오프네트워크정당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고자 법안을 내고 통과시켰다면, 이제는 이를 딛고 도약해 국민참여 경선의 법제화, 당원 구조의 중층화, 청소년의 정당 활동 허용 등 정당 개혁을 완성하려고 애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더 이루고픈 꿈이 많아 그는 낙선 이후에도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병을 꾸준히 돌고 있다. “낙선 인사만 6개월간 했고, 지금도 꾸준히 다니면서 ‘저 여자 왜 또 오지’ 욕먹을 정도로 다니고 있다”는 설명도 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저녁 무렵 최 전 의원은 지역구로 향한다고 했다. 짙은 베이지색 ‘모닝’ 차를 타고 말이다. 19대 의원 시절 국민 혈세로 받는 세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겠다며 살짝 궁상맞아(?) 보일 수 있음에도 꿋꿋이 타고 다녔던 바로 그 차이다. 서민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잘 아는 까닭에 그는 의원이든 아니든 경차 모닝을 탄다.
떠나기 전 그는 “정권이 교체되고 여당 원외위원장이 되니 세비는 못 받는데 돈이 많아진 줄 알고 아직도 모닝을 타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며 “이런저런 민원도 들어 드려야 하고, 돈이 필요하니 틈틈이 팟캐스트 같은 알바(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 글 보시면 좋은 알바 좀 소개해 달라”고 말하곤 웃었다.
◇ 말誌 기자 시작…언론운동 代母
언론 운동계의 대모 격이다. 1980년대 <말>지에서 민언련으로 적을 옮긴 그는 재정난에 자신의 아파트를 저당 잡히고 5000만 원의 빚을 내 민언련 사무실을 다시 얻기도 하면서 언론 운동에 투신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안티조선 운동’을 이끌었고,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국정기획자문위원을 거쳐 방송위원장 후보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19대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은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위원장직을 맡을 수 있다는 법 규정으로 인해 직은 맡지 못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미영 기자 bom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