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차기 부총재는 진행중 씨가 유력하다는데요. 성은 ‘진’이고, 이름은 ‘행중’ 쓰시는 분.”
최근 한국은행에서 꽤 자주 오가는 말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장병화 전 부총재 퇴임 직전인 6월 22일 출입기자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차기 부총재 인선을 묻는 질문에 “최종적인 시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진행 중에 있다”고 언급한 데다,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행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을 빗댄 것이다.
한은 부총재 자리는 6월 24일 장 전 부총재 퇴임 후 두 달 가까이 공석이다. 이 자리는 한은의 안살림을 도맡는 한은 2인자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 정책의 양대축 중 하나인 통화정책(通貨政策)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라는 역할을 담당한다. 여타 기관의 2인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자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때문에 지금처럼 후임자 인선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게 정상 상황은 아니다.
반면 한은 부총재 공석은 어느 정도 예견돼 온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 이후 장차관 인선 등이 이뤄지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에서도 자기 사람이 아닌 한은 전·현직 인사로 채워지는 한은 부총재 자리가 급할 것도 없을 게다.
신정부 출범 이후 주요 자리에 대한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한은 부총재도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왕 미뤄진 인사라면 차라리 두세 달 더 미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는 통화정책의 연속성 차원에서라도 금통위원들이 일시에 대거 교체되는 사태를 막아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4월 취임한 네 명의 금통위원들이 4년 임기를 채우면 2020년 4월 20일 한꺼번에 교체된다. 장 전 부총재 후임 인선이 곧바로 이뤄졌다면 부총재 임기가 3년이라는 점에서 차기 부총재는 2020년 6월 24일 퇴임할 예정이었다. 사실상 다섯 명의 금통위원이 한꺼번에 바뀌는 초유의 사태를 맞는 셈이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예고돼 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몫 금통위원을 2년가량 공석으로 두면서 4명의 금통위원이 한꺼번에 교체됐고, 이 총재 취임 후엔 전임 총재와의 갈등으로 박원식 전 부총재가 임기 11개월을 남기고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네 명의 금통위원을 임명하기 전부터 새롭게 뽑는 금통위원들 중 몇 명의 임기를 일시적으로나마 단축하자는 방안 등 여러 안이 19대 국회에서부터 논의되기도 했었다.
이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 말까지이고, 함준호 위원은 내년 5월 12일 임기가 끝난다. 부총재 임명을 두세 달 미룬다면 금통위원들과의 임기를 6개월 정도 벌릴 수 있고, 내년 퇴임자들과도 짧게는 5개월 정도의 시차를 둘 수 있다. 또 2020년 4월 네 명의 금통위원 퇴임 시 기존 위원 중 일부의 임기를 조정하거나 차기 위원 인선에서 일부의 임명을 미루는 것으로 금통위원들의 대거 교체 문제를 해소할 명분도 쌓을 수 있다.
시급성 면에서도 아직 급할 게 없다. 31일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가 예정돼 있지만 당장 금리를 변경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금통위원 한 명의 공석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13일 부총재 없이 치러진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게 금통위원들의 후문이기도 하다.
앞서 6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도 “지금 금통위원들 간에 견해차가 크지 않다. 일시적으로 6인 체제가 된다 하더라도 정책 결정에 리스크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11월에 임기가 끝난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겠다. 금감원 역시 당면 현안은 가계부채 문제이다. 진 원장을 전(前) 정부 인사라고 교체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1월을 전후로 차관급인 차기 금감원장과 한은 부총재를 임명하고, 내년 초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차기 한은 총재 인선을 구상한다면 신정부 차원에서도 금융·통화 당국자 인선을 큰 그림에서 일단락하는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