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끊임없는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의혹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정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남아공 역사상 첫 비밀 투표로 치러진 주마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부결됐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불신임 투표가 통과되려면 전체 400명의 국회의원 중 과반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투표는 찬성 177표, 반대 198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높은 실업률과 부패 의혹을 비판하는 야당과 국민의 사퇴 요구가 무산된 셈이다. 주마 대통령은 결과가 발표되고 1시간 뒤 국회의사당에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아프리카국민회의(ACN)의 저력을 증명한 날”이라고 연설했다. 주마 대통령은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해 현재 임기는 2019년까지다.
가디언은 이날 불신임안 부결로 1994년 이후 집권한 ANC을 향해 대중이 점점 노골적으로 환멸을 드러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투표를 진행한 국회 밖 거리에서 시민들은 주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전부터 부패와 추문으로 논란을 몰고 다녔다. 취임 뒤에는 사저를 증·개축하는데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벌과의 유착, 뇌물 의혹에 더해 친구의 딸을 성폭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임하는 동안 불신임안 표결이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400석 중 249석을 차지한 집권당 ANC 덕에 주마는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번 불신임 투표는 남아공 최초의 비밀 투표로 이뤄졌다. 투표를 앞두고 달러당 랜드화 가치가 상승한 것도 비밀투표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해서였다. 그러나 투표 뒤 실망감에 랜드화 가치는 1.3% 급락해 13.3795달러까지 내려갔다. 야당인 민주당의 므뮤시 마이마네 의원은 “주마의 지도력은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남아공 경제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난했다.
지난 3월 주마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내각 개편을 단행했다. 자신에게는 비판적이었으나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던 프라빈 고단 재무장관을 내친 뒤 말루시 기가바 전 내무장관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고단 전 재무장관은 남아공의 국가신용 등급 하락을 막고자 노력해온 인물이다. 주마 대통령이 고단 전 재무장관을 내치고 측근을 기용하자 랜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남아공은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국가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지난 4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남아공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S&P는 ‘BB+’로 한 단계 내렸다. 이는 정크등급 중 가장 높긴 하나 2000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남아공은 투자부적격 등급을 받은 것이다. 남아공 국민의 대통령 사임 요구가 높아지고 정치 상황이 불안해져 공공 재정이 허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초래했다. 또 석탄 수출 세계 2위를 차지하는 만큼 정치적 리스크가 원자재 관련업체의 주가를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