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친중(親中) 행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반도체에서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 투자를 늘리거나 현지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그중 친중 행보가 가장 두드러진 기업은 ‘특허 공룡’ 퀄컴이다. 퀄컴은 ‘특허 갑질’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지적재산권 사수에 열을 올리는 기업으로 유명하지만, 중국에서만큼은 ‘퍼주기’ 식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현지시간) 퀄컴이 중국 시장 접근권 유지를 위해 중국 정부의 ‘기술강국’ 사업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퀄컴은 중국 정부의 무인항공기(드론) 개발은 물론 인공지능(AI), 모바일 기술 및 슈퍼컴퓨터 개발에 대 기술은 물론 자금과 인력 등을 지원하고 있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도 발벗고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퀄컴은 중국 현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를 출범시켰고, 화웨이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들과 함께 신규 리서치·디자인센터를 세웠다. 또한 중국 현지 드론 개발사와 가상현실(VR) 장비, 사물인터넷 관련 업체들과 제휴를 맺었다. 지난 5월에는 스마트폰용 칩 개발을 위해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퀄컴은 또 중국의 반도체 생산 시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사의 고성능 반도체 칩 생산을 중국으로 옮길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퀄컴이 모든 국가와 기업에 이처럼 후한 기업은 아니다. 퀄컴은 주요 고객사인 애플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등에 제소했고 애플과 애플 부품 공급사인 폭스콘 등 4개사가 퀄컴을 제소하면서 맞불을 놓은 상태다.
NYT는 퀄컴의 이러한 행보는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에 기술이전, 합작투자, 가격 인하 등을 쏟아붓는 다른 미국 기술기업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웨스턴디지털, 인텔 등 상당수의 미국 기술기업들이 중국의 압박에 못이겨 현지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제휴를 맺는 등 기술은 물론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들이 이러한 지원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자칫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접근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이 중국에 이처럼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9억7500만 달러 규모의 벌금 철퇴를 맞으며 중국 정부와 충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벌금액은 퀄컴의 연간 중국 매출의 8%에 달하는 규모였다. 퀄컴이 요구하는 특허 관련 비용이 중국 기업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중국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결국 퀄컴은 중국 시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제품 가격 인하와 파트너십을 통한 중국 IT 기술 개발에 기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퀄컴을 비롯한 미국 기술기업들의 퍼주기식 제휴와 합작사 설립은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 ‘슈퍼301조’라 불리는 무역통상법 301조 적용을 검토했다.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 일부를 발동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이 받을 타격을 고려해 이를 잠정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경제적 차원은 물론 국가 안보 차원에서 미국 기업들의 중국 기술 지원을 우려하고 있어 슈퍼301조 카드가 아예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