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은 지기 시작했을지 모르나 7월 내내 한옥의 담장이나 시골 집 대문 혹은 도심의 축대나 옹벽을 아름답게 장식한 꽃이 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넝쿨의 연초록 잎사귀와 잘도 어울리는 주황색 꽃이다. 바로 능소화이다. 원래 중국의 강소성 지방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남부지방의 사찰이나 행세 깨나 하던 대갓집의 기와 담장을 타고 오르며 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왔고, 지금도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꽃이다.
능소화는 한자로 ‘凌?花’라고 쓴다. ‘凌’은 ‘능멸할 능’이고 ‘?’는 ‘하늘 소’이다. 직역하자면, 하늘을 능멸하는 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뻗어 오르는 모습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으리라. 알고 보면 참 아름답고 의미가 심장한 이름이다. 하늘 높이 뻗어 오르는 기상을 품고 있는 꽃이라니 말이다. 이러한 높은 기상을 기려 조상들은 울안이나 담장에 능소화를 심고서 자녀들에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기상을 품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능소화라는 이름에 그런 의미가 담긴 줄 아는 사람이 정말 많지 않은 것 같다. 포털사이트에서 능소화를 검색해 봤더니 설명 글이 많이 있었으나 정작 능소화의 주된 특성인 凌?의 기상에 대한 설명은 한 군데도 없었고, 한자를 써서 ‘凌?花’라고 쓴 곳도 발견하지 못했다. ‘Chinese trumpet creeper’라는 영어식 별명, 즉 ‘중국 원산의 트럼펫 모양 넝쿨식물’이라는 설명을 들이댄 곳만 많았다.
‘하늘도 업신여기려는 듯이 위로 뻗어 오르는 꽃’이라는 설명이 ‘중국 원산의 트럼펫 모양 넝쿨식물’이라는 설명보다 훨씬 매력적인데 왜 우리는 한자를 애써 버림으로써 그런 아름다운 설명을 다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능소화가 다 지기 전에 우리 모두 능소의 기상으로 다시 희망을 노래함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