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삶의 패턴을 멈추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휴가,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며칠이나 쓰고 있을까.
근로기준법상 연간 80% 이상 출근하면 유급휴가 15일이 보장된다. 3년 이상 계속 근무하면 2년에 하루씩 늘어나는데 25일이 한도이다.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들의 평균 연차휴가 부여 일수는 15.1일이다. 하지만 평균 사용 일수는 7.9일로, 5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평균 휴가 일수가 20.6일, 사용률이 70%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휴가 사용일은 5일 미만이 33.5%로 가장 많았고, 연차휴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도 11.3%에 달했다.
연차휴가를 다 쓰지 못하는 이유로는 ‘직장 내 분위기’가 45%로 가장 많았다. 상사가 눈치를 준다거나, 다들 안 가는 분위기인데 간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어 ‘업무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43.1%), ‘연차휴가 보상금 획득’(28.7%)의 순이었다.
그렇다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응답자의 절반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고 답했다. 이어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업무 능률 저하’(38.5%), ‘스트레스 및 피로 누적으로 인한 건강 문제’(33.3%) 등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했을 때의 경제 효과를 분석해 보니 소비 지출액 16조8000억 원, 생산유발액 29조3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 13조1000억 원에 고용 유발인원이 21만8000명인 것으로 분석됐다. 생산 유발액은 현대자동차 쏘나타 46만 대, 삼성 갤럭시노트4 1670만 대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경제적인 효과와 같단다.
휴가의 확대는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를 진작하고,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진다. 휴가를 통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삶의 질(質)과 업무 효율성도 높여준다. 휴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의 연쇄 효과는 결코 가벼이 볼 수준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눈치보기 문화’ 개선에 발 벗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올해 연차휴가를 다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관부터 “연가 소진에 솔선수범하라”는 특명을 내렸고, 소속 직원이 당당하게 휴가 가는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달 말이나 8월 초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가를 거의 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낙연 국무총리도 다음 달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정부 고위직 50명 가운데 48명이 이미 휴가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는 직장인들이 10일(비근무일 포함 2주) 연속으로 연차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대통령이 연차를 다 쓴다고 당장 직장인들이 상사의 눈치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또 10일 연속 휴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설령 통과된다 해도 실효성이 의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휴가 눈치보기’를 없애는 청신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