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 어느 날, 지하철 주변을 걷던 나에게 펜 한 자루를 쥐어 주던 분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나는 거절의 의미를 담아 예의를 갖춰서 “아저씨,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파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내가 ‘빅이슈코리아’라는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된 계기이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노숙자 자활잡지이다. 노숙자 등의 주거 취약 계층에만 잡지 판매의 기회가 주어지며, 잡지의 내용은 대부분 재능기부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국에서 시작된 ‘빅이슈’의 한국지부인 ‘빅이슈코리아’는 2010년도에 창립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노숙자를 동정(同情)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노숙자들은 애초에 노동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들에게 잡지를 직접 판매할 기회를 주고, 그 수익으로 자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러한 선순환의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 매우 멋있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빅이슈 판매원(줄여서 ‘빅판’이라고 한다), 바꿔 말해 노숙자들이 파는 잡지를 종종 구매했다.
계속 관심을 가지다 보니, ‘빅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빅돔은 노숙인과 함께 잡지를 파는 도우미를 말한다. 처음 빅돔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내가 다니던 대학교 정문이었다.
노숙자 아저씨는 처음엔 별로 반기지 않는 듯하더니, 이내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말할 사람이 생겨서 좋았나 보다. “몇 살이냐” “이 대학교 다니냐” “전공은 무엇이냐” “난 과거에 어땠다” 등등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당신의 삶이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무언가를 털어놓을 대화 상대가 필요했었나 보다.
잡지를 많이 팔 때는 한 시간에 세 권도 팔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한 권도 못 팔았다. 가끔 사람들이 잡지를 사러 오면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졸업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궁금해져 아직도 학교 앞에서 판매를 하는지 알아봤는데 학교 앞은 판매 장소에서 사라졌다. 그만큼 판매가 안 됐나 보다. 그 아저씨는 자립을 했을까, 아니면 다시 노숙인의 삶으로 돌아간 걸까.
당시 잡지를 판매할 때 외쳤던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라는 구호가 생각난다. 오늘도 그곳에서 세상을 바꿔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