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어가면서 30여 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여러 좋지 않은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데도 왜 주택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매수세가 감소해 위축 국면으로 바뀌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번에는 영 딴 판이라는 것이다.
요즘 주택시장에서는 규제를 하면 할수록 집값이 뛰던 노무현 정부시절을 닮아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장을 억제하는 6.19대책을 내 놓았는데도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있어서 그런 식으로 빗대 말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상황은 그때와 완전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이야 주택보급률이 2005년 기준 98.3% 수준이었고 서울은 93.7%였다. 여기다가 저금리 기조가 시중의 여유자금을 아파트 시장으로 불러 모았으니 집값 상승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안전성이 높고 미래가 보장되는 아파트는 투자자들의 좋은 먹이 감으로 각광을 받았다.
주택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르게 돼 있는데다 돈까지 몰려들었으니 당시 주택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게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만 빼고는 집이 남아돈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2015년 기준 102.3%다. 세종시는 123.1% 달하고 충북도 111.2%다.
시설이 너무 낡아 거주 기피 대상으로 꼽히는 노후주택을 감안할 경우 보급률이 120% 정도 돼야 수급 균형이 이뤄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단순히 보급률 문제 만으로 집값 향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주택이 부족했던 2008년 이후 몇 년 동안 집값은 대폭 하락했던 점을 봐도 그렇다.
가구수에 비해 주택수가 모자란다고 해서 꼭 가격이 오른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주택가격은 수급상황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다른 변수에도 흔들리는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뜻이다.
주택보급률이 낮은 상태에서도 완공된 주택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집값이 하락했던 적이 많았다.
지금의 주택시장 상황은 어떤가.여러 측면에서 도출되는 진단은 ‘좋지 않다’에 무게가 실린다. 공급 과잉 뿐만 아니라 요 몇년간의 집값 상승폭이 너무 가팔라 구입에 대한 저항감이 커졌다.
일부 지역에 몰려드는 구매수요도 끝물 시장에서 벌어지는 개미군단의 무분별한 진입 현상이라는 시각도 강하다.주식시장에서도 개미군단이 몰려오면 타자들은 팔고 빠진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주택시장도 그런 시점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미 동탄 신도시처럼 완공주택이 많은 지역에서는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는 그만큼 시장 분위기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그런데도 강남권과 같은 인기지역은 집값이 요동치고 있다. 가격이 비싼데도 구매수요는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곳만 골라 시장을 안정시키는 핀셋 처방책을 내 놓을 모양이다.
그래도 인기지역 집값은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정부 규제로 일시적인 안정세는 나타날지 모르지만 이번 정권에서도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
몇 가지 이유를 보자.
과거 참여정부 때처럼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내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주택정책의 얼개를 짜는 인물들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여유 계층으로 발전돼 집값을 과도하게 떨어뜨리는 정책을 배제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들도 자산 목록 1호인 주택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
더욱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집을 갖고 있어 정치적 관점에서도 주택시장을 위축시키는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을 입장이 못 된다.
또 한가지는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엄청난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다. 선뜻 가슴에 와 닿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이 개발지대로 변모될 소지가 많다.
이를 통해 일자리까지 창출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는가.
말이 도시재생사업이지 실제로는 소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대형 건설사가 동네 전체를 밀어내고 여기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방식의 재개발은 아니지만 규모
면에서는 결코 무시할 대상이 아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연간 10조원씩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한다지 않는가. 어마어마한 개발사업과 다를 게 없다.
노후지역 100곳을 선정한 후 정부 자금으로 기존 집을 리모델링해 공공 임대주택으로 재 활용한다는 계획이 있는가 하면 LH공사와 같은 공기업이 기존 헌 주택을 매입하여 여기에 새 임대주택을 짓는사업도 들어 있다. 게다가 소규모 단위의 재개발 사업도 적극 추진한다.
모두 정부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민간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개발사업이여서 오히려 파급 영향은 더 클 수 있다.
관련 지역 땅값·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매년 공공임대주택을 17만 가구씩 공급한다고 하니 곳곳이 개발지대가 될 게 확실하다.
이명박 정부가 100곳에 달하는 뉴타운지구를 지정하는 바람에 달동네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뛰었는지 생각해 보면 앞으로 주택시장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힐 게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붓는데 집값·땅값이 안 뛰고 배기겠는가.
낙후마을의 집값이 뛰면 인기 동네는 더 높은 폭으로 오르게 된다는 소리다.
요즘의 강남권 아파트값 급등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집값은 오를 게 뻔해 가격이 더 뛰기 전에 서둘러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추진 중이거나 계획돼 있는 큼직큼직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곳곳에 도사려 있다. 개발은 주변 부동산값을 뛰게 만든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정부에서도 주택가격은 강세를 보이지 않을까 싶다. 공급물량이 너무 많은 일부 외곽지대를 빼고 말이다.
결국 정부가 집값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