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도 출범 석 달 만에 사정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앞서 이른바 ‘사자방(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 방산 비리)’에 대해 “부정 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공언한 터라, 예측 불허의 사정은 아니다. 다만 전(前) 정권의 ‘민정수석실 문건’과 ‘면세점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까지 터진 터라, 그 범위를 예단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시작되는 4대강 정책감사와 국가정보원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은 사정의 범위가 넓고 크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은 대표적인 사정 기관이다. 작금의 여론과 정치적인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청와대 문건·면세점 특혜 의혹과 관련된 수사가 모두 서울중앙지검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에 대한 권력형 비리 사정에 중앙지검이 그 중심에 섰다. 더욱이 이전 정부에서 좌천됐다가 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특수통’ 출신 윤석열 지검장이 방아쇠를 당긴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흐름이란 분석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문 대통령이 윤 지검장을 발탁 기용한 것 자체가 이 같은 초대형 수사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 지검장이 14일 KAI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하자 갖가지 해석이 붙었다. 최근 방산비리 사건에 무죄 선고가 잇따르자 검찰 입장에선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황이었다. 2014~15년 대검찰청 반부패부 산하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이 대대적인 수사 끝에 재판에 넘긴 전직 군 장성들에게 최근 법원이 잇달아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때문에 윤 지검장이 KAI를 첫 사정수사 대상으로 삼은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미 상당 부분 주요 혐의를 포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가 조작과 횡령 등 그동안 제기된 의혹은 물론, 비자금 조성과 박근혜 정부 실세와의 유착 의혹까지, 검찰 수사 결과 이 의혹들이 입증될 경우 파장이 클 전망이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이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내부 적폐청산에 착수함에 따라 검찰 내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 역시 윤 지검장이 조사를 총괄할 것으로 보여 관심이 크다. 윤 지검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으로 외압을 폭로했다가 좌천된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일련의 사안들로 인해 적폐청산 주체의 정당성이 또다시 이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수많은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게다가 이제는 정치적인 고려를 일절 배제하고, ‘진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액션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 정부 때 검찰의 사정 권력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비선 실세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정은 새 정권엔 통과의례(通過儀禮)로 꼽힌다. 옛 정권과의 단절을 통해 집권의 정당성을 제시하며 동시에 인적 쇄신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의 사정이 온전한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적은 없다. 검찰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수사가 엄정하게 진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또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