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인터넷, SNS상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먹방과 음식 사진을 보면 “보릿고개의 원혼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그 걸신들이 우리의 무의식에서 솟아나 저리도 게걸스레 먹어대는 모습을 온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비추고, 또 비추는 것인가”라는 배병삼 영산대 교수가 칼럼 ‘문화로 읽는 세상-낯 뜨거운 맛집 탐방’에서 행한 비판이 절로 수긍된다.
미국 CNN, 영국 데일리 메일 등 외국 언론이 지적하듯 TV와 인터넷, SNS의 먹방은 푸드 포르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Rosalind Coward)가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에서 처음 사용한 ‘푸드 포르노(Food Porno)’는 시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한 음식 관련 콘텐츠를 지칭한다. 음식의 맛에 집중하기보다 뚜렷한 색감과 시각적 부분에 치중해 보는 사람의 식욕과 식탐을 자극한다. 기업과 미디어는 푸드 포르노를 먹방으로 위장해 사람들의 끝없는 식탐을 극대화해 계속해서 이윤을 창출한다.
TV, 인터넷, SNS에 넘쳐나는 푸드 포르노는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인식을 디자인하고 지배한다. 맛과 상관없이 화려한 색감과 과장된 분위기로 연출된 화려한 음식들이 비싼 가격표를 달고 최고의 음식으로 등극한다. 푸드 포르노는 음식들이 지위와 계급, 부의 등가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 나아가 음식들이 정신적 허기와 육체적 욕망을 진정으로 충족시켜준다는 확신을 하게 한다.
푸드 포르노의 포로가 된 수많은 사람이 미디어와 기업이 만들어낸 맛집(?)으로 돌진해 충족될 수 없는 식탐으로 무장한 위장의 포만감을 위해 아우성친다. 푸드 포르노의 화려한 음식을 향한 아우성이 커질수록 굶주리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 커진다. 푸드 포르노가 이기적 소비지상주의로 물들게 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망각시키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식품의 3분의 1이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30억 명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다. 푸드 포르노가 판치는 우리 역시 하루가 다르게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가 폭증하고 있다. 과도한 식탐에 위장을 필요 이상으로 채우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세계 기아 실태와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장 지글러(Jean Ziegler) 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의 “굶주림으로 죽은 아이는 살해된 아이다”라는 주장과 세 끼 보리밥 먹는 생활에도 만족하며 주린 아이들을 늘 걱정하고 보듬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필요한 것 이외의 것을 가지지 않을 때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라는 한 줄의 글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음식 과소비와 낭비에 대항해 버려지는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덤스터 다이버(Dumpster Diver: 유용한 물건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밀가루를 반죽해 직접 만든 칼국수와 김치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에 행복을 느끼는 이효리의 일상(jtbc ‘효리네 민박’ 9일 방송분)이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