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3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저출산 문제 해소를 선정했다. 향후 5년을 초저출산(超低出産)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판단하고 적정인구 5000만 명을 지킨다는 목표이다.
그동안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10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저출산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인구절벽’이란 신조어를 낳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출생아 수는 3만400명으로 1년 전보다 13.6% 줄었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출생아 수는 35만 명 선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0만6300명으로 역대 최소였다. 가임 여성(20~39세)은 2006년 799만 명에서 지난해 685만 명으로 10년 새 114만 명이나 줄었다. 혼인 건수도 매년 떨어져 최근 5년 새 4만8000건 줄었다.
한국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추정치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세계 224개국 중 220위로 최하위권이다. 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도 당연히 꼴찌이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인구절벽 해법의 첫 출발인 저출산은 계층별로 상황이 달라 접근법이 어렵다”며 “한국의 인구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저출산을 시민의식과 문화의 변화로 접근하는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가족의 가치’가 회복돼 아이를 낳는 게 좋다는 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의 발단은 일자리에서 시작됐다는 게 신 회장의 판단이다. 신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고, 자식을 낳아 기르기가 쉽지 않은 현실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며 “그러면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생기고, 미래보다 ‘바로 지금’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신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드라이브를 건 ‘소득 주도 성장론’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저출산 대책의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봤다. 신 회장은 “내가 결혼할 때인 50년 전에도 취직하기 전에는 결혼과 출산을 미뤘다”며 “저출산 대책 최우선은 근본적인 고용·소득 안정화”라고 역설했다. 신 회장은 이어 “서민의 아픔을 같이 나누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아동수당 같은 대서민 정책이 국민들에게 아기를 낳게 하는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젊은 세대일수록 결혼과 출산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고, 자식을 낳아 기르기가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제도 있지만 저출산의 큰 원인 중 하나가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미래보다 ‘바로 지금’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인 욜로족이 요즘 유행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개인의 생활을 침해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후회 없이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큰 비용을 들였는데도 실패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의 저출산 정책은 양육 비용 지원 등 기혼 가구 위주로 이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만혼(晩婚)·비혼(非婚) 현상을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해 이에 따른 결혼율 하락이 저출산 추세를 더욱 심화하게 했다. 또한 인공임신중절(人工姙娠中絶)로 인해 ‘포기되는 출생’에 대한 사회적인 보호가 미흡했다. 한국 사회의 미혼모는 임신한 순간 생활고, 사회적인 편견, 양육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상대적으로 고출산 국가인 스웨덴은 미혼모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국민 모두를 복지의 수혜 대상으로 본다. 스웨덴의 미혼모들은 사회보장제도의 보호 속에서 의식주를 보장받고 독립된 생활을 하며, 독신모가 학생인 경우에는 학비 지원, 탁아시설 등을 통해 자녀 양육의 부담을 최소화해 일반 학생들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집행해야 하는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고용·보육 분야 등에서 다양한 정책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의 가치’와 ‘자녀가 주는 행복’이 강조될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80년대 지속적으로 사용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국민이 기억할 정도로 홍보 효과가 컸다. 교육과 홍보는 5년, 10년 시행 뒤에나 성과가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빨리, 그리고 꾸준히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저출산율 극복에 효과가 있는지
“청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연애, 출산, 결혼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은 줄이고, 고용의 질은 높이려는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청년들에게 그들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게 할 것이다. 결혼과 출산도 그중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을 추진하는 아동수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민이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아동수당은 보육과 함께 육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는 기본적인 제도로 의미가 크다. 또 아동수당이 저출산 극복 차원을 넘어 아동이 경제적인 빈곤에 속박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제도임을 고려할 때 아동수당 도입 움직임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소득 과다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구에 일률적으로 지급하면 아동당 지원액이 소액이 될 수밖에 없다. 소득연계 여부, 연령, 출생순위 등을 비롯해 지급금액 등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독박육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육아의 주체는 여성이 아닌 ‘여성과 남성 모두’라는 인식이 재정립돼야 한다. 도와주는 아빠가 아닌 함께하는 아빠가 될 때 양성평등에 좀 더 빠르게 다가설 것이다.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족과 기업, 사회가 배려해야 하며, 남성 또한 자녀 양육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협회는 남성의 육아 참여를 응원하는 ‘함께하면 든든육아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협회에서 중점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결혼·출산·양육에 대한 가치관의 회복’이다.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가족의 가치가 소홀히 여겨진다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결혼과 출산의 최종 선택은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회는 ‘행복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이 강조될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와 교육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기고, 아이가 내 맘 같이 잘 따라주지 않아 속상한 일도 많다. 날 닮은 아이가 예뻐 ‘나’를 내려놓고, ‘엄마’와 ‘아빠’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녀와 가족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선물한다. 청년들에게 부부가 되고, 부모가 돼 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보람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청년 세대가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결혼과 출산, 육아를 위한 제반 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협회도 임신·출산·육아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1946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동인천고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웨일즈대 대학원 경제사회학 석사와 연세대 보건학 박사를 취득했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보건사회부 총무과장·감사관·대통령 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사회복지정책실장을 거쳐 복지부 차관으로 퇴임했다. 이후 심사평가원장, 건양대 보건복지대학원 원장, 한국실명예방재단 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최고의 보건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부 재직 당시 국외 입양인 지원사업을 주관했고,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로도 활동했으며, 2009년 문을 연 중앙입양원장을 지냈다. 10년 전 막내 아들을 입양했을 정도로 입양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깊다. 인구보건에 관한 오랜 연구활동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제13대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