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 삼성의 ‘침묵’ㆍSK의 ‘용기’

입력 2017-06-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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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정책사회부 차장

재벌 기업인 삼성과 SK그룹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는 어떨까.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 긍정 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정농단 사건들의 재판장에서는 이들 재벌에 대한 이미지가 엇갈리는 듯싶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 공판을 살펴보면 ‘삼성의 침묵’과 ‘SK의 용기’로 사뭇 대조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2일 증인으로 출석해 삼청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할 때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가석방을 비롯해 그룹의 현안을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사안을 달리 해석하면 최 회장 스스로 부정청탁·대가관계 등의 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이는 연이은 재판에 지친 기색을 보였던 박 전 대통령이 바짝 긴장한 태세를 보일 만큼, 예측의 범위를 벗어난 발언이었다.

이날 최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앉아 있는 피고인석 쪽으로는 한 차례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기업 총수 입장에서 대통령과 나눈 독대 내용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데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 스스로 베일 속의 이야기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최 회장의 증언은 ‘청탁 → 뇌물공여 → 특혜’의 고리를 입증해야 할 특검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독대는 말 그대로 둘만 참석한 자리이기에 어떠한 얘기가 오갔는지 녹취가 없는 한 내용 확인이 어렵다. 그러나 최 회장의 증언은 특검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재판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국정농단 재판에 임하는 삼성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26일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그룹 전직 고위 임직원들의 태도를 보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될 듯싶다. 특검 측의 첫 질문부터 입을 다물기 시작한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모든 증언을 거부하겠다”며 이어진 질문에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증언 거부 소명서를 제출한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도 신문 없이 귀가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자신들의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증언 거부 사유를 밝혔다.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증언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권리이다. 그러나 삼성 고위층의 이런 태도는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범죄 사실에 비춰 보면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법조계에선 법 위에 군림해 온 행태를 법정에서까지 재연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농단의 진실 규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승희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해외 은닉재산 의혹도 부정적인 요소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6월 이 부회장이 해외계좌 신고액 5000억 원을 자진신고해, 이를 면책해 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자녀 유학비로 2억 원 정도 해외 송금한 사실은 있지만, 개인적인 해외 자산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며 이를 일축했다.

사실 재벌은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를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공신(功臣)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한국 재벌들은 지금 정경유착(政經癒着)의 고리를 끊는 ‘시대의 획을 긋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련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초일류 기업답게, 기업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비난은 면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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