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심사숙고 끝에 통신비 절감 대책을 내놨지만 설익은 정책을 앞세운 정부의 시장 개입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가 전날 발표한 통신비 인하안을 둘러싸고 정부, 이통사, 시민단체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기본료(1만1000원) 폐지가 물거품이 됐다며 ‘공약 후퇴’에 반발하고 있고, 이동통신 3사는 ‘25% 요금할인제(선택약정 할인)’와 ‘보편요금제’ 도입 등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욱이 국정위가 마련한 △선택약정 할인율 20%에서 25%로 상향 △보편요금제 등의 대책은 국회 입법 또는 정부 고시로 추진해야 한다. 정책을 법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사업자, 야당, 시민단체 등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망되고 있어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갈등은 정리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의 핵심인 기본료 폐지가 불발된 것에 대해 공약 후퇴라면 중장기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국정위의 통신시장 이해도가 부족해 미래부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기본료 폐지가 무산됐다”며 “당장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요금 인하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요금할인율 인상 외에는 눈에 띄지 않고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 폭도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소폭 인하에 그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택약정 할인은 휴대전화 구매 시 공시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일정 기간 통신요금을 할인받는 제도다. 양환정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이통사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선택약정 요금제보다 공시 지원금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시 지원금을 추가로 올려 가입자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약정 요금 인상을 통한 혜택이 공시 지원금을 선택한 소비자들에게도 확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본료 폐지 불발로 한숨 돌린 이통사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과 보편 요금제의 도입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할뿐더러 통신비 인하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는 빼고 이통사에만 전가하는 처사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통사들은 현재 대형 로펌의 자문을 구해 조만간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선택약정 가입자 비율을 유지하고 할인율만 25%로 상향해도 연간 3200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며 “할인율이 25%로 올라가면 거의 모든 고객이 단말기 지원금 대신 선택약정 할인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피해 금액은 훨씬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희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할인율이 25%로 높아져 선택약정 할인 가입자 비중이 30%로 늘 경우 이통 3사의 매출 및 이익이 5000억 원, 50%로 증가하면 1조7000억 원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에 대한 책임을 이통사에 떠넘기고 있다”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통신 유통망과 관련 산업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