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그 어느 때보다 책임이 막중하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대외 문제가 임계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북한핵 문제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대표적이다. 당면 현안들은 단순히 국방 문제를 넘어 정치·외교·통일·안보 등 전 분야에 걸친 ‘고차방정식’이 된 지 오래다. 외교부, 국방부 등 한 부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가안보실의 책임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가안보실 수장을 맡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정통 외교관료 출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 실장 인선 배경으로 대북 문제를 포함한 현안들을 ‘외교’로 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2013년 국가안보실이 만들어진 이후 군(軍) 출신인 김장수(육사 27기)·김관진(육사28기) 전 국방부 장관이 안보실장을 맡아온 것과 비교된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 정부는 대외 현안을 강경 기조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제 제재와 함께 대화와 협상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안보 핵심 자문그룹 ‘국민 아그레망’ = 정 실장의 대표적 네트워크로는 전직 외교관을 주축으로 한 ‘국민 아그레망’을 꼽는다. 아그레망은 프랑스어 ‘agrement’에서 나온 외교용어로 특정한 인물을 외교 사절로 임명하기 전에 파견 상대국에서 동의하는 과정을 뜻한다.
국민 아그레망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이전인 2월 16일 외교 자문역 수행을 위해 발족했다. 문 대통령은 “안보 문제를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안보적폐”라고 말했다. 이어 “혹시라도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당시 한국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위기’ 그 자체였다. 북한의 김정남 피살 사건과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동시에 발생했다. 또 보수진영은 연일 문 대통령의 사드 배치 입장 등을 들어 ‘안보관 불안’을 집중 질타했다. 이에 문 대통령 측은 보수층의 안보 불감증 해소와 보수진영의 ‘북풍(北風)’ 공세를 차단하고자 국민 아그레망을 출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 아그레망은 단장인 정 실장을 포함해 총 24명의 전직 외교관으로 구성돼 있다. 구성 명단을 살펴보면, 조병제(61·외시 15회) 전 말레이시아 대사가 국민 아그레망 간사를 맡고 있다. 이 밖에도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이태식(72·외시 7회) 전 주미 대사와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이수혁(68·외시 9회) 전 독일 대사, 신봉길(62·외시 12회) 전 요르단 대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향후 국민 아그레망은 문 대통령 외교 자문그룹으로서 광폭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단순히 자문그룹을 넘어서 실제 입각을 통해 그 세를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수혁 전 독일대사는 민주당 문미옥 비례대표 의원이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의원직을 승계했다. 앞서 이 전 대사는 4·13 총선 당시 비례대표 15번에 이름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 전 대사를 직접 영입하면서 “최고의 통일·외교 전문가”라고 평한 바 있다.
조병제 전 말레이시아 대사도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차관 후보로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는 등 새 행정부에서 외교 분야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아시아 정당 지도자·정부 고위직과도 두터운 인맥 자랑 = 정 실장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어 정치권 인맥도 넓은 편이다. 특히 정 실장이 정치권에 입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과 친분이 두텁다. 정 의원과의 친분은 1990년대 정 실장이 외교부 공보관을 맡으면서 공보관과 출입기자 관계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연으로 정 의원이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을 때 정 실장을 추천해 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 조언자로 역할을 하면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쌓아 현재 자리에 오르게 됐다.
또 정 실장은 오랫동안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공동 상임위원장 겸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아시아 정당지도자와 아시아 정부 고위직들과도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정 실장의 외교부 인맥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인물로 국가안보실 산하 신재현 외교정책비서관과 권희석 안보전략비서관이 꼽히고 있다. 외교안보수석 역할을 하는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도 최근 임명돼 정 실장의 외교부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정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는 이종 사촌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