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은 과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크게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일어났던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이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이미 예상됐던 양적완화 축소를 언급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흥국 주가가 폭락하고 통화 가치가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신흥시장은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준이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013년보다 더한 ‘매파’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신흥시장은 무덤덤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연준은 전날 끝난 FOMC에서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0.25%포인트 인상한 것은 물론 올해 세 차례 금리인상 전망을 유지했으며 자산 축소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 표명했다. 이에 홍콩증시 항셍지수가 1.2%, 한국 코스피지수는 0.5% 각각 하락했지만 여전히 올해 두자릿수 상승률은 유지했다고 WSJ는 강조했다.
연초만 해도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불안이 존재했다. 그러나 연준이 긴축을 점진적으로 펼치고 시장에도 미리 언질을 주면서 이런 불안이 완화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등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은 여전히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했다. 이에 투자자들이 계속해서 고금리 자산인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신흥시장 증시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스MSCI이머징마켓ETF’는 올들어 19% 올랐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들은 신흥시장 주식과 채권을 205억 달러 순매수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6개월 연속 자금 유입이 이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연준이 4조5000억 달러(약 5056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연내 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장기금리 급등 우려가 커졌지만 많은 투자자가 신흥시장에 낙관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애슐리 페롯 UBS자산관리 범아시아 채권 부문 대표는 “연준의 현재 자산 축소 접근방식은 마치 욕조 안의 물을 골무로 비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만일 경제지표가 호조를 유지하고 성장궤도가 예상대로 나아간다면 연준의 자산 축소가 다른 나라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단순히 금리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신흥국들이 연준발 충격을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신흥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을 포함해 많은 신흥국이 올해 경제성장과 무역증가세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2013년 긴축 발작과 대조적으로 올해 신흥시장이 동요하지 않는 것은 중앙은행과 투자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좋아진 것도 한몫한다고 풀이했다. BNP파리바자산운용의 아서 쾅 아시아·태평양 증시 부문 대표는 “4~5년 전만 해도 신흥시장은 연준이 자산매입을 줄이고 금리인상 사이클 시작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연준과의 의사 소통도 훨씬 많아졌다. 이제 연준 움직임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