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취임하면 초반에는 가맹·대리점 골목상권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새 정부의 유력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골목상권 보호 발언을 쏟아내면서 ‘골목상권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자영업자가 600만 명에 달하고 이들 대부분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 영세업종에 집중돼 있는 국내 현실에서 가맹본부나 유통 대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에도 여야 할 것 없이 소상공인 보호·지원에 관한 법안이 발의돼 있다. 복합쇼핑몰도 월 2회 의무휴업에 동참하고, 현재 월 2회인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늘리며, 동네 슈퍼를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이 이를 위반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안 등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미 이전 정부에서도 규제 일변도(一邊倒) 정책만으로 소상공인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돼 왔다.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씩 휴무했지만 동네 슈퍼나 전통 시장 매출이 늘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비자의 불편만 초래했다. 내수 불황으로 백화점을 비롯한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전통시장을 포함한 중소유통 매출도 2012년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된 이후 105조7000억 원에서 2015년 101조9000억 원으로 3년간 3조8000억 원이 줄었다.
대기업들이 빠지면 규제에서 자유로운 외국 기업들이 빈자리를 밀고 들어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숱하게 겪었다. 이명박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계열사들의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를 규제하자 대기업들이 철수한 시장에 ‘오피스디포’ 등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왔다.
빵집 역시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제과·제빵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했고, 지난해 다시 2019년까지로 재지정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출점을 제한했다. 그러자 국내 대기업 브랜드 대신 ‘곤트란쉐리에’ 등 프랑스, 미국, 일본의 유명 빵집 브랜드들이 국내 가맹사업에 뛰어들면서 반사이익(反射利益)을 얻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형마트도 이미 온라인이나 모바일쇼핑몰 등에 시장 파이의 상당부분을 빼앗긴 지 오래이다. 쇼핑의 대세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온라인·모바일 쇼핑이 더 커지면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온라인쇼핑몰에도 영업시간 제한을 도입하겠냐는 황당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입점업체나 납품업체들도 모두 소상공인, 중소기업인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니 편 내 편으로 무 자르듯 편을 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전통적인 프레임에 갇혀 획일적으로 좋다 나쁘다, 된다 안 된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접근은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산업과 시장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온라인 유통 거물이 된 아마존은 이미 오프라인 유통 거물인 월마트를 제쳤고, 유통업을 기반으로 출판, 미디어 콘텐츠, 정보기술(IT), 전자기기, 패션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전통적인 지배자들의 시장을 빼앗고 있다. 개인 집을 다른 이에게 임대해 주는 에어비앤비나 개인 차량을 빌려 주는 서비스인 우버는 기존 숙박업계와 택시업계의 시장을 빼앗으며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카카오가 택시, 대리기사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전통 오프라인 사업자들을 흔들고 있고, 현재 미용실을 비롯해 사업 진출을 연구 중인 아이템만 수십 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목상권을 살리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동네 상점에서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보다 쾌적한 매장에서 좀더 신선하고 믿을 만한 상품을 사고 싶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정부라고 해서 재래시장으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범 한 달을 맞은 새 정부가 강자를 몰아붙이며 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약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소비자들이 이에 공감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 사상 최악의 ‘소비절벽’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