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정오 무렵이나 오후 7시쯤이면 주변 사람들이 날더러 교수를 그만두고 시장을 해 보라는 권유를 해서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내가 차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뜻이라도 있는 줄 알고서 상당히 의아해한다. 그러면 나는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아니, 정오 무렵이나 오후 7시경 식사 때가 되면 제게 ‘시장하시죠?’라고 묻는 사람이 많기에 하는 말입니다.” 박장대소가 터진다.
밥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밥을 먹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시장하시죠?”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서둘러 밥집을 찾는다. 이때의 시장은 ‘嘶腸’이라고 쓰며 각기 ‘울 시’, ‘창자 장’이라고 훈독한다. 배가 고파 장이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우는 상태를 일러 ‘嘶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시장할 때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결식아동도 있고 노숙하며 구걸하는 사람도 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김모 군(당시 19세)이 사망했다. 안전과 노동 양면에서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진 사고였다. 특히 그의 가방에서 컵라면 하나가 발견되었을 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던 그의 고단한 삶 앞에서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고시원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취준생’들도 시장할 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대강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들이 매일 듣는 ‘꼬르륵’ 하는 嘶腸의 소리는 입으로 외치지 못하는 절규를 배가 나서서 대신하는 것이리라.
날마다 방영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나 ‘시식’ 프로그램을 자제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식아동,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본다면 얼마나 먹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