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한 후 박순녀는 기어이 1950년 서울대 사범대 영문과를 졸업한다. 졸업 후 중앙방송국에서 수년간 일하며 방송 드라마를 집필했으며, 동명여고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번역과 창작에만 집중하였으며 이후 외도하지 않았던 작가로서의 삶이 그녀에게는 큰 보람이었다고 전한다.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케이스 워카’가 입선되고, 이후 1962년 ‘사상계’에 ‘아이러브유’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1958년 역시 월남한 소설가 김이석(金利錫)과 결혼하지만, 남편은 결혼한 지 6년 만에 사망하게 된다. 이후 딸 하나를 키우면서 미망인으로서 힘겨운 생활을 영위하며 창작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박순녀는 세상의 강고(强固)한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자의식 강한 여성을 소설의 인물로 세워 많은 창작 텍스트를 생산해 낸 지적인 여성 작가이다. 특히 박순녀의 소설은 가족 등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식민 체제, 해방 이후의 독재 체제라는 정치적 공간의 문제 등을 제기했다는 데 그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박순녀는 월남 전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주한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미국의 오만함을 폭로하기도 하고(‘외인촌 입구’),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가 폭압적으로 강요되었던 식민지 시대 여학교의 풍경(‘아이러브유’)을 통해 식민 체제의 본질을 고발한다.
또 1970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았던 소설 ‘어떤 파리’에서는 동백림 사건을 은유화하여, 반공 이데올로기의 폭압적 체제 내부에서 감시받는 전향한 지식인 남성의 공포를 소재로 냉전 체제 하 한국 정치사의 폭압성을 고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열정적인 창작 활동으로 박순녀는 1988년 ‘비단 비행기’로 한국소설문학상, 1999년 ‘기쁜 우리 젊은 날’로 펜문학상을 수상한다.
또한 박순녀는 생계를 위해 많은 번역서를 낸 번역가이다. 1959년 루 포올의 ‘사랑은 아낌없이’(인문각)를 시작으로 C. 브론테의 ‘제인 에어’, 핏츠제럴드의 ‘로리타/위대한 개츠비’, E.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애거사 크리스티의 다수의 작품을 번역한 바 있다. 1972년 ‘어떤 파리’, 1976년 ‘칠법전서’, 1998년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소설집을 출간하고 1987년 꽁트집 ‘나를 팝니다’, 1987년 소년소설 ‘미야가 오르는 길’, 1990년 동화 ‘별순이’ 등을 펴낸다. 지난해 12월 제1회 춘원문학상을 받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