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히려 이런 시기를 겨냥해서 나온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특별시민’이다. ‘특별시민’은 2011년 권언유착(權言癒着)의 비리를 파헤친 ‘모비딕’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던 박인제 감독의 신작이다. 3선 고지에 도전하는 여당 출신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는 좀 다르게 영화 속 서울시장의 소속 정당은 보수 정당이다. 거기에 도전하는 여성 후보 양진주(라미란)는 중도 정당 소속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변종구는 지금의 자유한국당, 양진주는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기획된 지 꽤 됐는지, 후보들의 기호가 현실과 다르다. 변종구의 기호가 1번이고 양진주가 2번이다. 유세 점퍼 색깔도 변종구는 파란색, 양진주가 적색 계열의 주홍색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상한 착시를 만들어 낸다. 영화 속에서 온갖 술수와 협잡, 음모를 벌이고 심지어 음주로 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그걸 은폐하는 등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1번 후보처럼 보인다. 2번 후보는 (문제는 많지만 그나마)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려 애쓰는 사람처럼 묘사돼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이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선거 국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겠다며 슬금슬금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건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잘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디테일에 약한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정치는 이미지의 공학이다. 평소 정치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 요즘의 각 정당이 벌이는 유세 현장을 TV로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파란색의 후보와 붉은색 점퍼의 후보에 대한 호감도에 어떤 차이가 벌어지게 될까.
기이한 착시와 자칫 있을 수 있는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영화가 유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게 꼭 ‘영화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식으로 결론을 이상하게 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 감독이 비판하고 싶었던 집권 여당의 색깔이 파란색이었을 것이다. 기호도 1번이었고. 현실에서는 그게 거꾸로 됐지만. 어쨌든 감독이 영화를 다 찍고 나니 정치판이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색깔을 바꾸고 난리를 친 이후인 걸 도무지 어쩌란 말이겠는가.
그러니 진정, 세상이 문제다. 정치판이 문제다. 영화를 만들 때하고 다 만들어서 극장에 내놓을 때의 세상이란 건 비교적 같은 모습과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변화가 있다 한들 좀 차근차근, 상식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1년 아니 한 달,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과 정치판이 요동을 친다. 박근혜를 구속하겠다고 앞장선 사람들 10여 명이 이번엔 그녀를 풀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가 잘못했다며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 허구한 날 벌어지는 상황에서 영화가 그걸 어떻게 일일이 체크하고, 바꾸고, 수정하고 그러겠는가.
영화가 잘되려면, 팩트 체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세상이 좀 안정적으로 돼야 한다. 세상이 좋아야 영화가 좋아진다. 만고의 진리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는 세상이 엉망이었는데도 좋은 작품들을 계속 내놓았다. 세계가 놀랐던 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한계치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을 정리할 때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영화 ‘특별시민’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개봉하지 말았어야 했다. ‘뭘 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케팅 전법을 썼어야 했다. 종편에서 막장급 방송을 해대는 정치평론가들의 얘기가 더 재미있는 세상이다. 굳이 같은 얘기를 극장까지 찾아가 볼 생각들을 했겠는가. 이 영화는 개봉이 두 달쯤 먼저 됐으면 대박이 났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특별시민’은 개봉 2주째인 현재 전국 130만 관객을 모으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로는 그 배 이상을 했을 영화였다. 그나저나 대선 후에는 이 영화가 어떻게 보일까. 그때까지 극장에서 잘 견뎌 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