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콩 네 알을 심자

입력 2017-05-02 10:31 수정 2017-05-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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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예로부터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음 해에 지을 농사용 종자(種子)는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그만큼 종자는 농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베고 누울 종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과거 우리나라 종자산업의 선두기업이었던 흥농종묘와 서울종묘, 중앙종묘, 청원종묘 모두 외환위기 때 외국 기업에 인수·합병됐고, 당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영세 규모의 개인 육종가가 종자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변모했다. 그 사이 세계 종자시장은 크게 성장해 2015년 746억 달러 규모가 됐고, 미국과 중국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1%에 머물러 있다.

최근 종자산업은 단순히 농사용 종자를 넘어 기능성 식품이나 의약품, 화장품 소재, 바이오 작물용 종자에 이르기까지 영역이 확장되면서 막대한 부(富)의 축적이 가능한 첨단생명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종자산업을 선점하려는 ‘총성 없는 종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의 켐차이나가 스위스 신젠타를 인수했고, 그해 9월에 독일의 바이엘이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미국의 몬산토 인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기후와 오랜 농경문화로 인해 다양하고 우수한 종자를 많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침략과 전쟁 등을 겪으며 우수한 종자가 해외로 많이 유출됐다. 더욱이 오늘날 농부들이 수확량이 많고 재배가 용이한 신품종을 선호하면서 농촌의 많은 토종자원이 소멸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노먼 블로그 박사는 우리나라 앉은뱅이 밀을 가져가 기존 품종보다 생산량이 60% 이상 증가하는 ‘소노라 64호’라는 품종을 개발했고,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일조한 공로로 197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콩이 나지 않던 미국이 세계적인 콩 수출국이 된 것은 콩 원산지인 우리나라의 종자를 가져가 개량해 생산한 결과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일본은 우리나라 제주도 왕벚꽃을 가져가 150여 년간 품종을 개량해 지금의 벚나무를 만들었고, 크리스마스 트리목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를 미국이 가져가 개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종자가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이 부각하면서 우리의 종자 자원을 대하는 국민들의 인식이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토종 자원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농업인들이 많아졌으며, 정부의 지원 정책 또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2013년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골든시드프로젝트(GSP)를 출범시켰다. ‘금보다 비싼 종자’라는 의미의 이 사업에 2021년까지 4911억 원을 투입해 고추, 배추, 무, 토마토, 양파, 양배추, 감귤, 백합, 닭, 돼지 등의 종자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외국으로부터 2억 달러의 로열티를 벌어들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품성이 높은 우수한 신품종 종자 개발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수한 우리 토종 자원을 보호하고 개량해 발전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콩 세 알을 심어 한 알은 벌레나 새가, 또 한 알은 이웃이, 남은 한 알은 땀 흘린 농부가 먹도록 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콩 세 알이 아닌 네 알을 심어 우수한 종자를 보존하고, 개량하자. 종자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뛰어넘어 생명과 나눔, 순환의 의미를 지닌 소중한 가치다. 이 사실을 농업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깨닫길 바라며, 앞으로도 종자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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