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인구 줄어든다고 자산시장 안 무너져… 진짜 문제는 ‘취업절벽’

입력 2017-04-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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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지난 몇 년간 한국 경제의 불안감을 키웠던 일련의 주장이 있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2017년을 기점으로 부동산 및 주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인구절벽론’이다. 우리보다 먼저 인구 감소를 경험했던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은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의 일본화’를 기정사실(旣定事實)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국내 증권업계 대표적 경제분석 전문가로 꼽히는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20년 경력의 이코노미스트로서 선진국 사례, 일본의 장기불황 과정, 한국의 자산 시장과 인구통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최근 펴낸 책 ‘인구와 투자의 미래’를 통해 인구절벽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홍 팀장을 만났다. 그는 인구 감소를 경험한 선진국 중 장기 불황을 겪은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영국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뒤에도 자산 시장이 성장했다는 것. 일본의 전철을 피한다면, 우리나라도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성장세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제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국내 경제 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현실을 강조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인구 감소와 무관하게 국내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한 것은 결국 청년실업 때문”이라며 “단기적으로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인구절벽론을 반박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구 변화 같은 어떤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세상을 다 설명하려 드는 시각이 상당히 위험하고 무모하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는 심리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구가 감소할 테니 경제가 망할 것이다’라고 믿게 되면 정말로 그 나라의 경제가 망가진다. 지난 몇 년간 소위 배웠다는 분들이 무책임한 ‘공포팔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들었다.”

△다른 나라의 자산 시장은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나

“국민연금의 운용역으로 근무하던 시절, 해외투자 확대 방안을 두고 선진국과 신흥국 중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보다는 신흥국이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 비교해 보니 달러로 환산한 자산 시장 수익률에서 선진국보다 신흥국이 뛰어나지 않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접어든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영국 중 자산 시장이 안 좋은 곳이 없었다. 부동산이 많이 오른 나라는 주식이 비교적 못 올랐고, 주식이 많이 오르면 부동산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지만, 대체로 반반씩 투자했다고 치면 어마어마한 성과를 냈다.”

△왜 유독 일본만 자산 시장 붕괴와 장기 불황을 겪은 것인가

“우선 일본의 자산가격 거품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또 일본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많았다. 주식 시장은 1989년부터, 부동산 시장은 1991년부터 무너졌는데 일본의 실질정책금리는 1994년까지도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가격 폭락을 촉진했다. ‘언더워터(집값보다 대출금이 더 많은 상태)’에 있는 가구가 늘었고 사람들은 빚을 갚기 위해 저축을 늘렸다. 모두들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자 경제 전체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 국가에서 내수가 구조적으로 망가진 것이다. 여기에 은행마저 대출 회수에 나서자 전방위적 위기로 번졌다. 원인은 인구 감소가 아니었다.”

△장기불황을 피해간 다른 나라는 일본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

“미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은 일본 사례를 열심히 공부했다. 2000년대 초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990년대 일본의 교훈’이라는 재미있는 보고서를 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1g이라도 있을 때는 시장 참가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공격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고, 디플레이션을 완전히 탈출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절대 섣불리 금리를 올려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이 교훈을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극복하는 데 활용했다. 거꾸로 최근 일본 경제를 일으킨 ‘아베노믹스’는 미국의 대응을 보며 일본이 다시 교훈을 얻은 것이다.”

△한국의 자산 시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일본처럼 거품이 있나

“우리나라의 자산 시장은 과거 일본과 달리 거품이 심하지 않다. 한국의 자산 시장은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 모두 크게 저평가돼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경우 실제 소득증가율 대비 주택가격 상승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주택가격 상승률은 소득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식 시장은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이라고 하는데도 PBR(주가순자산비율)가 1배에 불과하다. 가장 높다고 하지만 실제 자산가치 정도밖에 평가를 못 받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 가운데 어느 쪽이 좋은 모습을 보일까

“독립 변수가 아니다. 경제가 살아난다면 내수재인 부동산 시장이 좋아질 것이다. 경제가 회복된다면 일자리가 늘고, 혼인이 많아지고, 출산율이 반등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부동산이 나쁠 이유가 없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베이비붐 세대가 돈을 투자한다면 자신들이 잘 아는 부동산으로 갈 것이다. 반면, 경제 상황이 계속 암울하다면 주식 시장이 유리하다. 내수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 금리가 떨어지거나 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당수익률이 오르는 추세여서 시장금리와 배당의 역전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주식 시장의 매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관론이 팽배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 구조 측면에서 자산 시장보다 고통스러운 문제는 저출산과 청년들의 취업난에 있다. 경제 주체들이 도저히 경제 상황을 낙관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산율과 취업난은 사실 같은 문제이다. 직장이 있고 장래에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아이를 갖는 것 아니겠나. 좋은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데,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은 200만~3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관론의 본질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실업 사태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청년의 취업난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앞으로 5년 뒤면 한국도 일본처럼 대졸자 완전 고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분은 한국에 와 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 노동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2003~2004년이었는데, 12~13년 지나서야 노동력 공급과잉이 해소됐다. 사실 일본의 공급과잉 해소는 너무나 슬픈 방향으로 진행됐다. 장기실업자들이 영영 노동 시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아예 한 세대 전체를 배제해 버린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비관론을 걷어내려면 어떤 해결책이 있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세계적으로 재정이 건전하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기업과 가계의 비관론을 일거에 부술 만한 정도의 경기 부양책을 펼치면 된다. 젊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있다. 일본이 그랬다. 20년간 하락하던 경제가 ‘아베노믹스’ 한 방에 저렇게 살아났다. 많은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하지 않나. 경제 주체들의 생각이 바뀌면 미래도 바뀐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느껴진다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어 학생들과 종종 대면한다. 안타까운 점은 학생들이 너무 눌려 있다는 것이다. 미래가 막막하니 모두 스펙에 매달린다. 그러다 보면 문제 해결 능력, 고민, 글쓰기 능력, 상상력 등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서 멀어진다. ‘비관론’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적당한 인센티브는 자극이 되지만, 너무 강한 채찍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과한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가 젊은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당부 한마디한다면

“이런 저런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지만,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기에 부족함이 많다. 다만 희망을 걸어 보자. 다행히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바닥을 쳤다. 올해는 도저히 답이 없겠지만, 적어도 내년은 몇 년간의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순환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좋은 취업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에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홍춘욱 팀장은 국내 증권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으로 첫발을 뗀 뒤 증권사로 자리를 옮겨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굿모닝증권 기업분석부를 거쳤다.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채훈아빠(현재는 채훈우진아빠)’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하다. 경제·금융 시장의 흐름을 짚어주는 홍 팀장의 블로그 누적 방문객 수가 932만에 달한다.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 명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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