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국가의 전략적 이해 관계가 같기 때문에 갈등할 이유가 없습니다. 잘못(핵 개발)은 북한이 했는데, 손해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보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국내 최고의 중국금융 전문가’로 꼽히는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조선족인 안 교수는 2003년 한국에 온 뒤 15년 동안 중국 경제와 관련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두 나라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보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안 교수는 “좀 더 세심한 외교 전략이 있었다면 사드 문제가 갈등으로 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최근의 한·중 갈등 국면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강도 세지면 금융 변동성 확대 불가피
△최근 국내 경제계의 화두는 단연 중국의 사드 보복이다. 한국과 중국에 모두 관계된 신분으로서 이번 국면에 남다른 생각이 들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매일 사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최악의 상황마저도 생각하게 되고 불안감도 느낀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크다. 다행히도 중국 관영 방송사 CCTV가 소비자의 날(3월 15일)에 방영하는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국 기업을 다루지 않았다. 파급력이 큰 프로그램이다. 당초 롯데 등 한국 기업을 두드릴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중국이 제재의 고삐를 잠시 내려놓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기간에 영향을 줄 만한 조치를 자제하는 것 같다.”
△중국이 현재까지 한국에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한 것으로 보는가
“지금까지는 일부분이다. 중국은 유통, 여행, 문화 콘텐츠에 한해 제재를 가했다. 롯데의 경우에도 자국 규정을 위반한 사항을 전에는 눈감아 주다가 이제 법대로 처리하는 수준이다. 만약에 두 나라 관계가 더 심각해져서 다른 산업에까지 전방위적인 제재가 온다면 코스피 지수 자체가 쇼크를 받을 것이다. 중국이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도 있는 만큼, 여러 가지로 한국 기업의 자본 융자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예상할 수 있을까
“한국은 중국에 있어 자본수지 흑자국이지만, 2014년 기점으로는 양상이 다르다. 한국의 중국 FDI(해외직접투자)는 줄고 중국 자본이 한국으로 나와서 기업에 투자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외국인 보유 채권 중 18% 정도는 중국의 국부펀드가 갖고 있다. 관계가 악화되면 채권을 처분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기존의 경상수지·자본수지를 구성하던 사이클이 아예 끊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逆보복? 애국심으로 장사하지 말자?
△당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중국을 압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꾸로 질문을 하고 싶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부분은 이미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했다. 조만간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로 지탱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중국에서 ‘한국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삼성전자가 애국심에 불타서 중국에 팔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나?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이 애국심에 공장을 철수하면 그만큼의 성장률을 어디에서 만들 수 있을까?”
△‘이 선만은 넘지 말아야 한다’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면
“여행객이 오지 않는다거나 화장품 통관을 거부당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가 개선되면 여행객은 다시 올 것이다. 진짜 걱정되는 부분은 양국 국민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상황이다. 양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반목하면 양국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의 국면이 대책 없이 지속되면 이런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부 시위대가 중국 대사관 앞에 가서 중국 국기를 태우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정말 자중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언론 역시 이미 작게라도 타오르기 시작한 불씨를 더 키우는 방향으로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의 관계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국민들의 반한(反韓) 감정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관측이 대다수다
“두 나라 모두 잘못된 뉴스가 많다. 일례로 중국에 있는 지인이 동영상을 보내며 안부를 걱정했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한국과 미국 국기를 흔들면서 중국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국 내 중국인들이 안전한지 묻더라.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라고 말해줬다. 반대로 한국에서 전해지는 중국 내 분위기도 부풀려진 면이 있다. 한국 뉴스만 보면 중국인들이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직 사드 이슈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도 상당히 많다.”
△한국과 중국의 사드 갈등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드 배치 문제를 ‘친미(親美)’냐 ‘친중(親中)’이냐,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의 국익에 대해 더욱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한국이 영원히 전쟁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1만 개라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사적으로 ‘강 대 강(强對强)’의 국면을 키우고 있다. 정말로 한국의 안위를 위하는 길인지 실제로 따져봐야 할 일이다.”
방범 CCTV에 이웃집 안방 보인다면…
△두 국가의 국익이 상충한다면 갈등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 게임에서 실상 한국과 중국의 이해 관계는 다르지 않다. 한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원하고, 북핵이 없다면 사드도 원치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도 북한의 핵과 한국의 사드가 동시에 없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방어권 구축을, 북한은 한국과 중국이 멀어지길 원한다. 잘못은 북한이 했는데 손해는 한국과 중국이 봤다. 반대로 누가 이익을 봤는지도 분명하다. 북한과 미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갈등은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하는 작용을 한다.”
△한국으로서는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국제 정세의 흐름에 희생양이 된 것 아닌가
“외교적으로 보다 세련되게 풀었다면 현재와 같은 갈등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방범 목적으로 설치한 CCTV에 이웃집 안방이 화면에 잡힌다면 양해를 구하는 게 맞지 않나. 중국도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설득 과정이 있었다면 충분히 납득했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보다 중국의 위신을 좀 더 세워 줬더라면, 사드도 배치하면서 국내 기업의 경제 손실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고 본다.”
美中전략대화 같은 협의채널 필요해
△꽉 막혀 있는 지금의 교착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과 중국이 대화를 해야 한다. 아직도 대화의 여지는 많다. 전략적 이해 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중국도 손해이다. 중국은 세계 리더 국가로서 발돋움하고 싶어 한다. 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위상을 제고하려면 한국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아시아에 많은 국가가 있지만, 내놓을 만한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일본은 사실 중국과의 역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한국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외교적으로도 높게 대우해 줬다.”
△이번 국면에서 정부가 중국 전문가 그룹의 조언을 충분히 구했다고 보는가
“이 질문에는 다른 대답으로 대신하겠다. 한국의 정부나 주요 기업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의 거의 95%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중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중국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를 처리한다. 이번 일을 계기에 한국의 경영자·관리자급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서 중국 전문가들이 좀 더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중 관계와 관련해 한국의 차기 정권에 요청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외교적 문제가 터졌을 때 소통할 수 있는 고위급 협의체가 있어야 한다. 더러는 ‘한 번 봐 달라’고도 부탁할 수 있는 긴밀한 네트워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중국과 적대적 경쟁 관계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중앙정부 최고위층 간에 ‘중미전략대화(또는 미중전략대화)’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 개방도 바로 중미전략대화에서 시작됐다. 한국에도 이것과 비슷한 ‘한중전략대화’ 같은 것이 필요하다. 현재 실무부처 사이의 관계가 있긴 하지만, 전격적이고 포괄적인 의사결정은 불가능하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평소 하지 못했던 민감한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유화 교수는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 출생으로 길림화공대 화학공정학과를 졸업한 뒤 상하이 푸단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연변대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던 중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2003년 한국으로 건너와 2013년 2월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연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아시아기업지배구조연구소(AICG) 실장,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쳤으며, 현재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객원 연구위원, 금융투자협회 중국자본시장연구회 부회장, 외교부 경제분과 자문위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