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저지 의혹 일부 인정… 법관 블랙리스트는 없어"

입력 2017-04-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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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대법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의 학회 학술행사 규모를 축소하려고 시도한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다만 특정 성향의 판사 명단을 관리했다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17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법관의 부당 지시 의혹과 인사발령을 둘러싼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법원 내 연구모임 중복가입을 금지한 조치는 부당한 것이라고 결론냈다. 예규에 따른 것이지만, 그동안 사실상 방치해둔 규정을 근거로 모임 가입에 제한을 가한 것은 특정 연구회 또는 공동 학술대회를 견제하기 위해 부당한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이를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의혹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이모 판사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2심의관으로 발령났다가 돌연 직위해제되면서 불거졌다. 연구회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남용 문제를 지적하고 일선 판사들이 느끼는 재판부 독립 저해 요소에 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후 임종헌(58·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 판사를 통해 설문조사 결과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판사가 요직인 행정처 심의관 직을 고사하고 원 소속 재판부로 복귀하면서 부당한 인사조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위는 이 판사의 심의관직 겸임해제 조치는 본인 의사에 따른 것으로 결론냈다. 임 전 차장은 논란이 일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위원회는 일부 언론에 보도된 '법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관계자 진술과 행정처 기획조정실 본연의 업무에 비춰볼 때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년간 연구회 회장을 지낸 이모 부장판사를 조사했다. 인사조치 대상이 됐던 이 판사는 조사과정에서 이 부장판사로부터 "기조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다. 그러면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텐데, 그러더라도 놀라지 말고 좋은 취지에서 한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말을 들은 이 판사는 충격을 받아 집에 돌와와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판사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고, 이 부장판사 역시 이 말을 한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내용에 비춰보면 임 전 차장이 아닌 이 부장판사가 이번 의혹의 중심에 있다. 이 부장판사는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아 행정처 간부들과 교류가 잦았고, 임 전 차장이 주재하는 실장회의 등을 통해 연구회 활동내용을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연구회 소속 판사들에게는 '외부와 연계한 대회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취지의 의사도 전달했다. 조사위는 이미 올해초 연구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 부장판사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적정한 수준과 방법의 정도를 넘어서는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법관 인사제도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움직임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관의 자율적인 연구모임과 활동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법제도와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논의는 법관의 독립과 결부된 중요한 문제이므로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법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수렴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2일 구성된 조사위는 26일 동안 이메일 및 통화내역, 법원행정처 보관문서 등을 확보하고, 11명의 관계자를 대면조사하고 20명에 대해서는 서면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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