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Debt Service Ratio)의 조기 도입에 관한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DSR 규제에 들어간 KB국민은행을 제외한 각 은행들은 ‘연내에 개인대출 심사 시 실질 DSR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특히 국민은행을 시작으로 타 은행들도 조만간 혹은 상반기 중 DSR 시행에 동참할 것이란 관측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신용정보원은 표준 DSR 정보를 은행에 제공하고 있다. 실질 DSR 정보제공 시점은 작년 12월부터다. 개인정보보호법상 다른 은행의 고객 금융거래 내역을 열람할 수 없는 시중은행들은 현재 신용정보원으로부터 넘겨받은 표준 DSR를 개인대출 심사 때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 to Income)을 보완하는 참고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DSR란 돈을 빌린 차주의 연간 전체 금융부채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상환액에는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포함된다. 대출받으려는 사람의 상환 능력을 평가한다. 표준 DSR는 금융업권의 대출 종류와 금리 등에 대한 평균을 산출해 상환 원리금을 계산한다.
이를 토대로 각 은행 자율적으로 고객마다 다른 대출조건을 일일이 확인해 실제 상환하는 금액을 책정하는 실질 DSR를 구축 중이다. 시중은행은 내년까지 실질 DSR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한 이후 자체 개인여신심사모형을 개발할 계획이다. DSR 본격시행 시기는 2019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DSR 기준 설정에 고려할 변수 많아” = 국민은행이 대출 시 차주가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인 DSR 규제를 17일부터 대출심사에 본격 도입하자 신한·KEB하나·우리·NH농협 등 타 은행들도 서둘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표준 DSR를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제공받기 시작해 DSR 정보 분석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고객마다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 등 대출 종류와 대출 금리 및 만기가 제각각이어서 신용등급에 따른 대출한도를 은행 자율로 만드는 작업에는 고려해야할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연봉이 5000만 원인 근로자에게는 신용등급이 우수하고 다른 대출이 없을 경우 통상 연봉에 상응하는 신용대출이 이뤄진다. 5000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 만기는 1년이다. 해마다 재직여부와 신용도에 따라 만기를 연장해주는데, 이 사람이 추가로 2억 원의 전세자금 대출을 요청한 경우 만기 24개월인 전세대출을 안분해서 연간 1억 원씩 DSR에 포함시킬지 여부가 문제된다. 안분하면 1억5000만 원이나, 안분하지 않을 경우엔 실질 DSR로 2억5000만 원을 잡게 된다. 전세대출 만기가 연장되거나 만기가 10년 이상인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에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특히 공공성을 띤 은행의 여신전략은 대외 신인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일단 발표하고 나면 구체적인 기준들을 수정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국민은행이 서두른 감이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제도 도입을 주도하는 금융위원회는 ‘올해 표준 DSR 활용→내년 실질 DSR 축적 및 은행 자체 여신심사평가 기준 설정→2019년 은행권 DSR 본격 시행’이라는 연초 마련한 가계부채 방안에 따른 DSR 로드맵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중은행 자율적으로 각 은행들 사정에 따라 DSR을 도입하는 문제”라며 “당국은 DSR 조기 도입 등 DSR 관련 정책 기조에 변동 사항이 없다”라고 밝혔다.
◇국민銀 DSR, 가계부채 조여질까 = 국민은행은 DSR 기준을 300%로 정했다. 신규 대출 시 올해 갚을 대출 원금과 이자가 연 소득의 3배를 넘으면 추가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금자리론·햇살론 등 정책금융 대출과 아파트 집단대출, 자영업자 사업자 운전자금 대출, 신용카드 판매한도, 현금서비스에는 DSR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DSR 300%를 적용할 경우 연 소득 4000만 원인 근로자에게 1억2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오는데, 이 대출금액에 보금자리론·집단대출·자영업자 운전자금 대출·신용카드·현금서비스 등 웬만한 부채 항목들이 빠지면서 과연 가계 빚이 조여지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은행은 개인 신용등급에 따라 250~400% 범위에서 대출을 차별화하기로 해서 연 소득의 최대 4배까지도 대출된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의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도 업계에서는 DSR 80%를 초과할 경우 위험차주로 분류한다. 표준 DSR의 80%가 적용될 경우 연 수입이 4000만 원인 금융소비자의 원리금은 32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해외 사례를 보면 웰스파고(Wells-Fargo) 은행은 자체적 여신기준에 의거해 미국 금융감독당국에서 제시한 적정 DSR 기준(43%)보다 엄격한 기준인 36%를 설정한 상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획일적인 기존 DTI로는 대출이 승인되는 다다채무자에 대해서는 DSR 기준을 통해 원리금 상환 부담에 일상적 생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과다대출 된 한계차주로 몰린 부분은 없는지 고객 개인별로 여신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살펴보고 이를 걸러내겠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