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우(70)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항소심 첫 재판에서 "구체적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어떤 원료로 바뀌었는지 등을 보고받거나 결재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독성물질이 들어있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작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취지다.
신 전 대표는 서울고법 형사11부(재판장 이영진 부장판사)의 심리로 14일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서 "대표이사로 근무할 당시 직원에게서 가습기 살균제 개발ㆍ제작 등을 보고 받았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신 전 대표는 1993년부터 2005년 4월까지 옥시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는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기 전 원료 변경을 검토한다고 5년간 2번 보고받은 게 전부"라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돼 소비자 클레임이 제기됐다는 내용을 보고 받았냐"는 질문에는 "제가 근무할 2005년에는 용기가 깨지거나 이런 건 있었지만 인체 호흡 관련 클레임은 구체적으로 없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1심은 "신 전 대표가 원료물질 변경 추진 과정에서 업무 현황을 보고받고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존 리(49) 전 옥시 대표도 직접 신문했다. 존 리 전 대표 역시 "제품이 판매되는 건 알았지만 문제되고 이런 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직 당시 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 변경 등 관련 문제를 논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반면 조모 전 옥시연구소장은 "주요 쟁점이나 이슈 있을 때 대표이사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 있었냐"는 재판장 질문에 "있었다. 주로 신제품 개발회의 때 본사에 가서 필요한 사항을 보고했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발언 기회를 얻어 억울함을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자식을 잃었다는 한 여성은 "시리아 화학무기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데, 가습기 살균제가 시리아 무기보다 더 나쁘다"며 "이들이 뉘우치지도 않고 항소한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소리쳤다.
2차 공판은 다음 달 12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린다.
신 전 대표 등은 2000년 10월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고 독성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들어간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만들어 제조ㆍ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 전 대표 등은 인체 안전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용기 겉면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넣어 판매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1심은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존 리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