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생명보험업계는 고군분투 중이다. ‘3저(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악조건을 헤쳐나가야 하고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준비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새로운 먹거리도 찾아야 한다.
생명보험협회는 난관에 처한 생명보험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금융당국과 업계 입장을 조율할 때 생보협회의 존재감은 더 커진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생명보험협회 16층 집무실에서 만난 이수창 회장은 ‘종심(從心)’을 앞둔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는 단단한 목소리로 보험업계 현안을 진단했다. 40년 이상 보험업에 종사해 온 이 회장은 보험업계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명확하게 전했다.
△보험사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가 화두, 적절한 관리 방안은
“보험업계도 금융당국의 우려에 공감하고 있다. 시세가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지역에 대한 담보대출을 실행하는 경우,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리스크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형 생보사를 중심으로 연간 가계대출 물량 계획도 작년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보험권 가계부채의 속성을 보면, 주택담보대출보다는 보험계약대출이 56%를 차지하고 있어 회사 전체적으로 가계대출의 질이 아주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생명보험업계는 가계대출에 관하여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위해 고정금리 대출 비중 및 비거치식 대출 비중을 지속적으로 상향 운영해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IFRS17 도입 준비로 분주, 주력해야할 부분은
“생명보험은 기본적으로 장기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양한 계리적 가정 적용에 대한 이슈가 있지만, 업계의 가장 큰 과제는 부채 급증에 따른 재무적 충격이다.
이에 대비해 다수의 생보사에서 후순위채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 배당성향 축소를 통한 이익의 내부 유보 등을 실행했으며, 앞으로도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포함한 여러 자본확충 방안을 실행할 것이다.”
△IFRS17 도입 후 생보업계 판도 변화를 예상한다면
“상당수 보험사의 부채가 증가할 예정이고 일부 우려 섞인 전망도 있지만, 새로운 기준서 및 관련된 건전성 감독제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 이를 속단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전 보험사와 금융당국, 협회 및 유관기관에서 새로운 제도 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제도 연착륙 방안에 대한 고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파산, 재건 과정을 거친 일본시장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최근 학회에서 거론된 치요다 생명은 일본보험사의 재정적 지급능력을 표시하는 솔벤시 마진의 안정적 수준인 200%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대출심사 프로세스를 무시한 최고경영자의 대출관여로 부실채권이 급증, 대출대비 부실채권이 1997년에 10.62%(업계 평균 2.93%)에 이르게 됐다. 보험사 리스크 관리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라 할 수 있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질수록 생보사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생보사 스스로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고 대외적인 환경악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최근 정부가 연금보험의 비과세를 축소했다.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저출산 -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의 최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솔루션이 있겠지만, 생명보험산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국가 예산 400조 원을 말하면서 복지 예산을 얘기하는데, 국가의 복지 예산을 지금처럼 늘리기 시작하면 SOC 등 미래발전 투자가 줄어들 것이다. 악순환이다.
국민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예산을 가지고 국민을 위한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게 아니라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독일의 리스터연금, 미국의 캐치업 정책도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세제 혜택을 축소했다. 생각하는 각도가 다르더라. 앞으로 정부에 그런 부분을 전반적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자살보험금 이슈,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것은 자살보험금 이슈가 된 재해특약 부분이다. 재해특약에 대해선 별도로 보험료가 부과된 게 없다. 재해사망 특약에 대한 보험료를 추가로 받았다면 보험금을 주는 게 맞다. 그러나 이번 자살보험금의 경우 (특약)보험료를 받지 않았다. 보험료는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금만 나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보험의 원리를 떠나서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안타깝다. 소비자 보호 차원이라고 하면 그런대로 의미 있는 것인데, 원론적인 측면을 보면 그런(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본인이 만약 생보사 CEO였다면
“충분한 복안을 얘기할 수 있지만, 가정하여 얘기하는 것은 안 맞는 것 같다. 업계 CEO들이 이번 자살보험금 때문에 고생했다.
어려움은 그쳤으니깐 지금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고, 미래를 위해서 조치를 해야 할 시기이다. 업계에 계신 분들보다 선배 입장에서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안타깝다, 문제였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미래를 얘기하자. 지나간 것에 대해 연연할 정도로 한가로울 때가 아니다. 오히려 준비를 하자’고 전하고 싶다.”
△소비자들이 보험사를 잘 믿지 않는다. 보험 상품이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신뢰 회복도 문제인데
“협회장에 임한 두 번째 이유가 보험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서이다. 보험업에 근무하면서 안타까운 부분은 보험 가입이 강요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시선이었다. 은행,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들어준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보험은 다르다.
예전에 지인들이 ‘이 사장 회사에 보험 3구찌(계좌)나 들어줬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들어주셨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반문한 기억이 있다. ‘들어줬다’는 것은 나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상대방에게 온정을 배푼다는 의미이다. ‘가입을 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민원이 다른 금융권보다 많고, 불완전판매도 많고, 다툼도 많으니깐 신뢰를 갖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 신뢰 회복을 위해 CEO들을 찾아다니면서 소비자 보호를 지켜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협회 내에도 소비자정책팀 등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부서를 운영 중이다.”
△보험의 정보 비대칭성 해소 방안은
“앞으로 정보산업시대에 생보산업은 ‘다치면 어떻게 해 준다’, ‘죽으면 어떻게 해 준다’는 등의 애프터산업이 아니라, 비포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앱을 개발해서 정보 비대칭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험가입 계약을 입력하고, 사고 상황을 기입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정보를 받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보험도 애프터서비스가 아니라 비포서비스가 될 수 있다. 애프터서비스는 1차원적인 것이고, 비포서비스는 어떤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맞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 최적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룬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없어질 것이다.”
△최초의 민간 협회장으로서 어려웠던 점은
“고객의 불편함과 원수사들의 애로사항, 감독당국·정책당국의 방향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곳이 협회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자사 입장에 매몰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고, 당국도 일방적으로 제도 변경을 하려면 갭이 생길 수 있다. 그 완충 및 소통의 역할을 협회가 한다고 본다. 버퍼 역할이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어느 이탈리아 미래학자는 ‘인구가 멸망할 때 남아 있는 산업은 보험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했다. 보험업은 인류의 필수불가결한 산업이라고 한다. 인류가 발명한 산업 중에서도 보험산업이 숭고하다.
저성장이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거기에 몸집이나 경영의 틀을 맞춰야 한다. 시절이 바뀌었는데 옛날 생각하고, 미래를 낙관하면 리스크가 생기는 것이다. 당국에 해외투자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하는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해외투자에 어떤 리스크가 있을지 모른다. CEO들이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담=이진우 기업금융부장, 정리=서지희 기자
◇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은 누구?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은 40여년 전 보험과 인연을 맺었다. 금융·경제와 동떨어진 서울대 수의학과(1971년 졸업)를 졸업한 그는 사시를 준비했던 실력을 살려 삼성그룹 법학부문에 응시했다. 그리고 1973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보험인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이 회장은 삼성화재, 삼성생명에서 12년간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2014년 생명보험협회 최초로 민간 출신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이했다.
◇ 주요 이력
△1967년 경북 대창고졸
△1971년 서울대 수의학과졸
△1973년 삼성생명보험 입사
△1990년 제일제당 대우이사
△1990년 삼성중공업 조선부문 대우이사
△1993년 삼성중공업 중장비부문 이사
△1993년 삼성생명 상무이사
△2001~2006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2006년 삼성 전략기획위원회 위원
△2006~2011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